칠석(七夕)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무슨 걱정이랴
뜬구름 같은 우리네 이별과는 견줄 것도 아니라네.
하늘에서 아침저녁 만나는 것을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이라 호들갑을 떠네.

* 이옥봉(李玉峰) : 조선 중기 여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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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의 아침 시편] 견우⸱직녀에게 배우는 우주적 상상력
바람결이 달라졌죠? 내일이 벌써 칠석(七夕)입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문득 이 시를 펼쳤습니다.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견우와 직녀가 안타깝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하늘에선 아침저녁으로 만난다는 발상이 참 재미있습니다.

똑같은 자연 현상인데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게 다르군요. 그야말로 천지(天地) 차이입니다. 하기야 천계(天界)와 인간계(人間界)의 시간이 같을 리 없겠지요.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도 ‘이 세상에 털끝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큰 산도 좁쌀만큼 작게 보이는 수가 있다’고 했으니,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게 한둘이 아닙니다.

우리말 ‘미리내’는 ‘용(미르)이 사는 시내’

시인들의 상상력은 참으로 끝이 없습니다. 밤하늘 긴 별무리에 ‘은하수(銀河水·은빛 강물)’라는 멋진 이름을 붙이다니!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은하’ ‘천하(天河)’ ‘천천(天川)’이라고 부르지요. 순우리말 ‘미리내’는 ‘용(미르)이 사는 시내’여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은하수 양쪽의 견우(牽牛)와 직녀(織女) 이야기는 또 얼마나 애틋한가요. 소 치는 목동과 베 짜는 여인의 러브스토리는 한·중·일 3국이 다 좋아하는 드라마입니다. 은하수에 다리가 없어 애태우는 둘에게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烏鵲橋)를 놓아준다는 설정이 흥미롭지요.

두 연인이 하늘에서 만나는 칠월칠석은 좋은 숫자 ‘7’이 겹친 길일(吉日)입니다. 이날 저녁에 오는 비는 두 사람이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다음날 동틀 무렵에 내리는 비는 이별을 아파하는 슬픔의 눈물이죠.

그래서 칠석 빗물을 약수 삼아 목욕하는 풍습이 전해져 옵니다. 중국에서는 칠석을 ‘연인의 날’이라 해서 데이트를 즐기고, 일본에선 조릿대에 단자쿠(短冊, 소원을 적어 매단 종이)를 걸고 복을 빕니다.

견우와 직녀가 사는 곳은 어디쯤일까요. 견우성(牽牛星)은 은하수 동쪽 독수리자리에 있는 알타이르(Altair)라는 별입니다. 지구에서 16.7광년 떨어져 있지요. 태양보다 약 2배 크고 10.6배 밝습니다.

직녀성(織女星)은 은하수 서쪽 거문고자리의 베가(Vega)를 가리킵니다. 지구와 25광년 거리에 있고, 태양의 2.3배 크기에 밝기는 34~40배나 되지요. 견우보다 직녀가 더 크고 밝습니다.

오작교 길이는 광속으로 16년 거리

이들은 어떻게 만날까요? 실은 만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바라보기만 합니다. 지구의 공전에 따라 우리 위치가 바뀌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죠. 칠석 무렵 우리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두 별의 각도 때문에 극적 상봉과 같은 착시가 일어납니다.

두 별 사이의 거리는 약 15.7광년에 달합니다. 까막까치가 놓은 오작교 길이도 그만큼 길지요. 빛의 속도로 달려서 16년, 사람의 평균 도보속도(시속 5.5㎞)로는 31억 년쯤 가야 닿는 거리랍니다.

시인들은 이런 시공간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넘지요. 이옥봉도 ‘만나고 또 만나는데 무슨 걱정이랴/ 뜬구름 우리네 이별과 견줄 수 없네’라며 우리 눈을 우주의 시각으로 확장시켜 줍니다.

연암 박지원은 시 ‘칠석’에서 ‘소 모는 소리 구름까지 들리더니/ 높은 산 밭두둑 푸르게 걸어놓았네/ 견우직녀는 어찌 오작교만 건너나/ 은하수 저쪽에 배 같은 달 있는데’라고 노래했습니다.

황진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견우와 직녀가 만난 뒤의 풍경을 노래합니다. ‘반달(詠半月)’이라는 시에서 그는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나/ 견우가 떠나간 뒤/ 수심 겨워 저 하늘에 던져버린 것’이라고 묘사했죠.

반달과 곤륜산의 옥, 머리빗을 연결하는 방식이 매우 참신합니다. 옥의 주산지인 곤륜산을 끌어와서는 그것으로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고, 견우와 헤어지고 난 뒤 상심해서 허허로운 하늘에 던져버린 게 반달이라니 그 상상의 넓이가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최고의 별 관측법은 ‘어린이의 눈’으로

중국 시인들은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점에 더 관심을 기울인 것 같습니다. 작자미상의 고시 ‘초초견우성(超超牽牛星)’에 나오는 ‘은하수는 맑고도 얕은데/ 떨어진 거리 얼마나 되랴/ 찰랑이는 물 하나 사이로/ 그리워도 말을 건네지 못하네’라는 대목이 대표적이죠.

일본 현대 시인 다카바타케 고지는 ‘칠석 비 내리는 밤하늘에’에서 ‘천구에/ 아름다운 곡선/ 우주색의 리본/ 내가 떠 있는 밤하늘과/ 당신이 사는 지상/ 서로 이어져 있어요’라는 구절로 천상과 지상의 화음을 연결했습니다.

가네코 미스즈의 ‘칠석 무렵’은 ‘아무리 늘리고 늘려도 아직 멀어서/ 밤하늘의 별, 은하수/ 언제쯤이면 닿을 수 있을까’라는 안타까움을 ‘소원을 적어 매달아놓은/ 오색의 예쁜 종이가/ 바래서 쓸쓸한 조릿대나무 가지’라는 아픔과 함께 녹여냈죠.

이 모두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 별의 애절한 사랑을 인간 삶에 투영한 작품들입니다. 미묘하게 다른 듯하면서도 상상력의 예각을 먼 우주 영역까지 넓혔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지요.

내일 칠석날 하늘은 여느 때와 똑같겠지만, 누군가는 이제 은하수 양쪽에서 서로 부르는 두 별의 표정을 각별하게 바라볼 것입니다. 별을 관찰하는 최고의 방법은 어린이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죠. 수많은 시인의 문학적 영감도 여기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위성·탐사선 이름도 ‘우리별’ ‘오작교’

우주를 향한 인류의 항해는 인문과 과학의 두 항구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나라가 쏘아올린 최초의 인공위성 이름은 ‘우리별’입니다. 광대무변의 우주 공간에서 별들의 신비를 탐구하는 첫 관측위성이라는 의미와 잘 어울리지요.

중국이 달 뒷면에 착륙시키기 위해 쏘아 올린 우주 통신중계위성 이름은 ‘췌차오(鵲橋·오작교)’입니다. 이 덕분에 지구와 교신이 가능했고, 달 뒷면 탐사에 성공했지요. 달 탐사선 ‘창어(嫦娥)’는 달의 궁전에 산다는 전설 속의 여신 ‘월궁항아(月宮姮娥)’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일본도 우주탐사선 이름에 ‘하야부사’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건 창공을 나는 ‘매’를 뜻합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별, 달, 매 등 하늘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군요. 과학자들의 상상력도 시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