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로빈의 남모를 슬픔
풍자문학의 대가 마크 트웨인은 “유머의 비밀스런 원천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고 했다. 배꼽을 잡게 하는 웃음의 이면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평생 남을 웃기는 희극배우의 익살 뒤에도 깊은 슬픔이 배어 있다.

할리우드 명배우 겸 코미디언 로빈 윌리엄스가 7년 전 스스로 삶을 마감했을 때, 그의 유머에 웃고 울던 팬들은 망연자실했다. 두 달 뒤 아내는 부검의 소견서를 통해 로빈이 ‘루이소체 치매’를 앓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병명도 모른 채 인지 장애, 손발 떨림, 불안, 환각에 시달리며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에서 안간힘을 썼다. 평소 기발한 애드리브로 제작진을 놀라게 했지만 대사를 제대로 외울 수 없었고, 경련이 오는 팔은 주머니 속에 감춰야 했다. 공황장애로 발작도 일으켰다.

정신이 돌아오면 “뇌를 재부팅하고 싶다”며 곤혹스러워했다. 마지막 2년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의사들은 “전례 없이 파괴적인 치매로 뇌의 모든 영역이 침해됐는데 그가 걷고 움직였다는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루이소체 치매는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증상이 모두 나타나는 질환이다. 파킨슨 증상 때문에 운동기능이 저하되고, 알츠하이머 증상으로 인지기능까지 떨어진다. 안타깝게도 그는 파킨슨병 진단만 받았고, 거기에 치중한 약물치료와 부작용으로 매우 힘들어했다.

그의 인생도 고통스러웠다. 밤무대 스탠딩 코미디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삶의 고비를 넘나들며 자신을 다잡는 동안 세상에 유머와 감동을 선사했다. 절친인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을 때 의사 복장으로 찾아가 웃겨주기도 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카르페 디엠(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을 설파했고, 죽기 열흘 전엔 딸을 안은 사진과 함께 “여전히 내게는 아기인 젤다, 생일 축하하고 사랑해”라는 말을 남겼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만든 다큐 영화 ‘로빈의 소원’은 7주기인 어제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4단계 때문에 가을로 미뤄졌다.

해맑은 웃음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면서도 내면에 남모를 슬픔을 안고 살았던 명배우 로빈. ‘굿 윌 헌팅’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나와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환자를 위로하던 그의 대사는 정작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