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조공제로 회귀하려는 중국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달 15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한국의 주권 문제”라며 “(사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면) 중국은 우리를 겨냥한 장거리 레이더부터 철거하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동맹의 기본 위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중국과 대등한 외교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이튿날 같은 신문에 기고한 반론에서 ‘사드’ 배치가 “중국의 안보상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고, 중국 인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중국 레이더를 언급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윤 전 총장이 전날 말한 내용을 비판했다.

싱 대사는 나아가 “천하의 대세를 따라야 창성한다는 말이 있다”며 “중국은 이미 5억 명에 가까운 중산층 인구를 갖고 있고 향후 10년 동안 22조달러(약 2경5102조원) 규모의 상품을 수입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앞으로 돈을 많이 쓸 중국에 등을 돌리면 사드 배치 때처럼 엄청난 경제적 피해가 따를 것이라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대사의 기고가 본국과의 협의 없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봐야 한다. 싱 대사의 발언이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는 점도 이를 확인해 준다. 2016년에는 추궈훙 당시 주한중국대사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만나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한·중 관계가 파괴될 수 있다”고 공개 협박한 적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을 속국처럼 생각하는 중국의 속내를 반영한다고 보는 게 옳다. 실제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7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본심을 털어놓은 바 있다.

중국은 2000년 이상 중국 중심의 조공제(朝貢制)를 이상적 국제질서로 삼아 왔다. 전한(前漢) 시기 ‘오복론(五服論)’으로 이론화되기 시작한 조공제는 현재의 국제질서, 즉 ‘베스트팔렌 체제’와는 판이하다. 베스트팔렌 체제가 형식적으로나마 대국과 소국의 평등한 주권과 생존권을 인정하는 데 비해 조공제는 종주국과 속국의 불평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속국은 일정한 주기로 왕자 혹은 고위관리를 종주국 중국에 보내 천자를 알현(朝)하고 지역 특산물(貢)을 바쳐 충성을 표시했다. 그 대가로 공물을 능가하는 많은 물건을 하사했다.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어려운 이름만 속국에는 엄청난 양의 비단과 황금 등 물건을 사실상 ‘뇌물’로 줬지만 이때도 형식만은 조공 형태를 취했다. 무역도 조공제의 일부로 이뤄졌다. 사절단과 동행한 상단에 정해진 장소에서 중국 상인과 거래할 수 있게 했다. 경제적 혜택과 경제적 보복을 외교 수단으로 삼는 현재 중국의 행태는 조공제의 현대적 재판(再版)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해서도 조공제의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미국에 요구한 ‘신형대국관계’의 수립과 밀접히 연결된다. 신형대국관계란 쉽게 말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않을 테니 대신 미국도 중국이 충분히 컸음을 인정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중국이 말하는 핵심 이익에는 대만을 포함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대한 주권과 영유권이 포함된다. 태평양의 서쪽 절반에 대해서는 중국의 지배를 인정해 달라는 대담한 요구였다. 2014년 보아오포럼에서 신형대국관계를 설명하면서 시 주석은 이웃나라와의 관계와 관련해 겸허히 자신을 돌아보겠지만 중국의 권리를 지키고 지역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주변 이웃을 속국화하려는 시도는 바로 신형대국관계와 쌍을 이룬다.

지난 20년에 걸쳐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부상하자 외교마저 중국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커졌다. 정부도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주권 수호라는 외교의 대원칙을 무시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언동을 보면 이 같은 기대는 환상이다. 속국 취급하는 중국의 횡포를 피하려면, 가장 중요한 국익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