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다행?
일본인과 결혼한 한국인 아내들은 남편이 일본의 국물요리를 먹으면서 “아~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야”라고 말할 때 몸서리를 친다고 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나라 사람과 살고 있구나 새삼 느낀다는 것이다.

한국인도 젊은 혈기나 취기에 “조국 위해 이 한목숨…” 하고 핏대를 올릴 때가 없지 않지만, 찌개 국물 한 숟가락에 “으~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야”라는 말을 하진 않는다.

일본인들은 이런 말을 참 쉽게 한다. TV 여행 프로그램이나 먹방(먹는 방송) 출연자 역시 추임새처럼 이 멘트를 잘도 걸친다. 국가가 대단한 일을 해줘서 그런 게 아니다. 온천에 들어갈 때,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때처럼 아주 사소한 행복을 느낄 때 습관처럼 이런 말을 한다.

월급은 30년째 오르지 않아

일본은 불과 할아버지 세대에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자국민만 310만 명을 죽게 한 나라다. 해외 전장에서 사망한 240만 명 가운데 113만 명은 아직 유골도 수습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불황 탓에 30년째 월급이 그대로인 국가이기도 하다.

이런 국가의 국민이 툭하면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며 감동하는 모습을 보는 외국인의 심정은 묘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 오래 거주한 외국인들은 공통적으로 일본인을 선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질감을 느낀다고도 한다. 일본인들의 선의가 매우 자기중심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선 선의로 한 행동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인큐베이터의 아기가 추울까봐 핫팩을 넣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엄마, 병아리들을 따뜻하게 해준다며 뜨거운 차를 줘 죽게 한 할아버지 등 안타까운 실화가 적지 않다.

이렇다 보니 다른 나라의 오해를 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인은 못 믿을 민족’이란 일본인의 오해도 자기중심적 선의에서 잉태됐다는 분석이 많다.

상당수 일본인은 한국 식민지화가 선의였다고 믿는다. 서양 열강의 비참한 식민지가 될 뻔한 형제나라를 거둬들였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일본이 패망하기 무섭게 돌을 던졌다는 배신감이 ‘혐한’으로 나타났다는 게 일본인 심리의 요체라고 주장한다.

서로가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일 관계 개선의 출발점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본에서 정보기술(IT) 사업을 하면서 일본 정부의 디지털화 정책 자문을 담당하는 한 사업가의 조언이다.

당연한 얘기로 들리지만 의외로 양국 모두 안 되는 부분이라고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란 말만 봐도 그렇다. 이 말에는 가까운데 왜 머냐는 안타까움, 가까우니까 같아야 한다는 동일시가 전제로 깔려 있다. 일본이 가야와 백제의 후손이라는 역사의식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에 한국이 필요 이상으로 분개하는 것도 식민지 경험에 더해 일본을 무의식중에 동일시하는 심리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가까운 나라 치고 멀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던가. 세계 최강 미국의 본토를 유일하게 침공한 국가가 이웃 캐나다다. 파라과이는 19세기 후반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주변국과 전쟁을 벌여 성인 남성 인구의 90%가 줄어든 역사가 있다.

이 사업가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한·일 양국은 항상 진의를 오해하고 왜곡해서 골이 깊어질 뿐”이라고 했다. 국물 한 모금에 출생의 행운을 말하는 일본인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가장 주목할 만한 조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