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배 옮기기' 수난사

배를 만드는 일은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큰 배일수록 더욱 그렇다. 수많은 사람과 대규모 물자를 싣고 바다 위를 안전하게 항행하려면 구조가 복잡하고, 사용되는 부품과 재료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배 한 척을 건조하는 데는 당대의 기술력이 총동원된다. 조선(造船)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건축물을 지을 때 쓰는 ‘build’가 붙은 ‘shipbuilding’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들기도 어렵지만 물 위에서 배를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지역의 가죽 배는 강을 거스를 수 없었던 탓에 하류에 있는 바빌론을 향해 ‘한 방향’으로만 이동했다. 19세기 초 ‘증기선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진 모든 배는 변덕이 심한 바람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노동의 상징인 갤리선의 노잡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뚜렷했다.

때로는 배가 물 밖으로 움직이면서 ‘역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살라미스 해전에 동원된 고대 그리스 전함들은 좀조개가 나무를 갉아 먹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밤 뭍으로 올려야 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메흐메트2세는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 위해 함대를 둘러업고 갈라타 언덕을 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청나라 서태후는 이화원에 대리석 석방(石舫·돌배)을 만들려고 북양함대 운영자금을 빼돌렸다.

초대형 선박이 최신 해도와 최첨단 항법장치로 운항하는 시대가 됐어도 배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진땀을 빼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좌초와 충돌, 전복, 침수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통계업체 스태티스티카에 따르면 2019년 대형 유조선과 화물선의 손실이 41건에 달했고, 이 중 ‘좌초’는 3건이었다. 세계선사협의회(WSC)는 2018~2020년에 연평균 779개의 컨테이너를 분실했다고 밝혔다. 대양에선 제아무리 커봤자 일엽편주(一葉片舟)에 불과하다.

22만t급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수에즈운하를 가로막은 지 약 1주일 만에 가까스로 ‘좌초’ 상태를 탈피했다. 뱃머리가 박힌 운하 제방을 파내고, 평형수를 빼고, 만조시간에 맞춰 예인선을 총동원한 끝에 배가 다시 떴다는 소식이다. ‘글로벌 무역 동맥’이 꽉 막힐 것이라는 공포도 곧 해소될 전망이다. 400m 길이의 초대형 선박을 다시 움직이는 데는 만들 때보다 훨씬 어려움이 컸다. 예나 지금이나 배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