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뜨거워지는 '반도체·배터리 동맹'
자동차 한 대 만드는 데 약 300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자율주행차엔 2000개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에도 40개가 쓰인다. 전기차산업에는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가 필수적이다. 희토류는 스텔스 전투기의 핵심 원료이기도 하다.

중국은 반도체 생산 3위, 배터리와 희토류 분야 1위 국가다.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지난해 15%로 대만(22%)과 한국(21%)에 이은 3위였지만 2030년엔 24%로 1위에 오를 전망이다. 배터리는 4년째 1위다. 희토류도 최대 생산국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희토류는 중국이 무역보복 수단으로 무기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소재·부품이다.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때 일본에 희토류 공급을 끊어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적이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도 언제든 무기로 쓸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어제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첨단 소재를 동맹국 제품으로 대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도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미국은 앞으로 반도체는 한국·대만·일본, 배터리는 한국·일본산 수입을 늘릴 계획이다. 희토류도 중국 대신 호주·아시아로 수입국을 바꾸기로 했다.

차세대 기술을 둘러싼 미·중 패권 다툼이 동맹국을 통한 ‘세계대전’으로 확산되면서 한국 기업들도 격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패권 쟁탈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할 수도 있다.

반도체 1위인 대만의 TSMC는 정부 지원과 한발 앞선 기술력으로 독주 체제를 갖추고 있다. 추격자인 중국도 2014년부터 최근까지 정부 돈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입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삼성전자 등 개별 기업들의 투자에 기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4~2018년 한국 반도체 기업의 매출 대비 정부 지원금은 0.5~0.8%로 꼴찌다.

삼성전자가 TSMC를 추격하기 위해 공장 신·증설 등 대규모 투자를 할 계획이지만, 정부도 연구개발, 세제 혜택 등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 50%를 웃도는 희토류의 대중(對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시장은 벌써 ‘반도체·배터리·희토류 동맹’ 소식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어제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주가 급상승했고, 희토류 관련 쎄노텍은 상한가를 기록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