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美·中 양강 체제 전환 필요
EU·신흥국 연대, 목소리 내야
빅테크, 기후문제 등 대응 효과

대런 애쓰모글루 < 美 MIT 교수 >
[해외논단] 트럼프 이후…글로벌 '4강체제'로 가야

21세기 들어 세계 패권 구도가 미국의 독주체제에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경쟁 양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글로벌 ‘2강’ 체제는 불가피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유럽과 신흥국들이 보다 역할을 키우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아마 미국 ‘1강’ 시대를 지낸 마지막 행정부로 남을 것 같다. 트럼프 행정부는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 와중에 미국의 국제적 역할을 축소시켰다.

많은 사람은 냉전 이후 줄곧 이어진 미국 주도 세계질서가 미국과 중국 양강체제로 재편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은 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상당한 지정학적 영향력을 확보했다. 중국 공산당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가장 최근 일어난 세계적 위기 두 건에 대응해 신속하게 자국 내 경제체제를 조정했고, 이를 통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 이젠 미국 노선을 따르지 않으려는 국가들이 정책 본보기나 물질적 지원을 얻기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일도 늘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양강체제가 확고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상 글로벌 양극단 질서가 들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각국 간 무력 충돌의 위험을 높여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세계적인 문제를 풀기 위한 합의도 종종 두 국가 간 갈등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류가 직면한 여러 가지 주요 문제를 풀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정보기술(IT) 문제가 대표적이다. 양국 모두 기술 발전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일반인의 사생활 보호 등 중요한 문제를 뒷전으로 두고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감시·통제를 늘릴 수 있다. 인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 경쟁을 하면서 연구 내용을 글로벌 각국과 공유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글로벌 양강체제에선 인권과 민주주의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중국이 체제에 위협적이라고 판단한 이들을 탄압하면 미국이 가치적 대항마로 떠오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얘기가 다를 수 있다. 미국은 앞서도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곳곳에서 충분히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킨 전례가 있다.

기후변화 대응도 그렇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양대 탄소가스 배출국이다. 에너지 집약적 경제모델로 세력을 키워왔다. 중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계속 제조업에 의존할 것이고, 미국에선 소비 수요가 커지고 클라우드컴퓨팅 등 신산업이 확장되면서 높은 에너지 수요가 이어질 것이다. 두 나라가 경제적 우위를 잡기 위해 경쟁함에 따라 어느 한쪽도 빨리 친환경 기조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빅테크, 인권과 민주주의, 기후변화 대응 등은 세계적 영향력이 좀 더 많은 국가끼리 나뉘어 있을 때 해결하기가 더 쉽다. 유럽연합(EU)과 멕시코, 브라질, 인도 등을 비롯한 신흥경제국 연합이 함께 주도하는 ‘4강체제’를 고려할 만하다.

EU는 이미 IT 관련 사생활 보호나 규제를 위한 표준 격으로 부상했다. 신흥국의 경우엔 서로 연대해 AI 기술 분야에서 목소리를 낼 동인이 충분하다. 풍부한 노동력 측면에서 비교우위가 있기 때문이다.

EU와 신흥국은 세계 기후변화 대응을 더 적극적으로 독려할 수도 있다. EU는 이미 세계 탈탄소화를 주도하고 있다. 신흥국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기존 선진국보다 더 많을 전망이라 이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신흥경제국 중 일부의 문제도 4강체제에선 줄어들 수 있다. 신흥국 연대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각국이 민족주의적이고 파괴적인 접근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4강체제는 양강체제보다 세계에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열어준다.

ⓒ Project Syndicate

정리=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