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경제구조의 저(低)탄소화 △신(新)유망 저탄소산업 생태계 조성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 전환 등 3대 전략을 축으로 한 범부처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구체화한 것으로 탄소세 도입, 배출권 거래제 재구축, 기후대응기금 신설, 탄소인지예산제도 도입 등의 세부 방안도 포함됐다.

각국이 잇따라 탄소중립 선언을 하는 등 저탄소화가 세계적 흐름인 만큼 동참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하지만 이번 전략에는 거창한 목표만 나열돼 있을 뿐, 실현가능성과 재원 등에 대한 검토는 빠졌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한마디로 알맹이 없는 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이다.

가장 핵심인 에너지 전환부터 그렇다. 탄소 발생이 많은 석탄발전을 줄이고 태양광·풍력발전 비중을 높인다지만 언제 어느 정도까지 석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할지에 대한 구체적 추진계획이 없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질 경우 비용이 급증하고 전력수급 불안이 커진다는 한계가 분명한데도 이에 대한 대비책이 안 보인다. 탄소배출량이 ‘0’이고 발전비용이 저렴한 원전을 이번 전략에서 쏙 뺀 것도 논란거리다.

더 큰 문제는 목표만 던지는 식의 탄소중립 밀어붙이기가 기업 부담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는 점이다.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28.4%로 미국(11.0%), 유럽연합(EU·16.4%)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多)소비 업종의 비중도 8.4%로 미국(3.7%), EU(5.0%)보다 크다. 이런 사정은 도외시한 채, 선진국의 탄소중립만 따라갈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은 에너지 전환비용과 전기요금 상승, 과중한 세금 부담과 환경 공시의무 등으로 그야말로 재앙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 의견을 수렴하기는커녕 탄소중립을 위한 주요 과제 확정시기를 내년 이후로 미뤘다. 석탄, 재생에너지 등 발전원(源)별 비중 조정이나 배출권 거래제 개편의 구체방안 수립이 내년 4분기나 차기 정부로 넘어간 것이다. 기업들로선 이에 대비한 로드맵조차 짜기 어렵게 됐다.

선진국은 탄소중립을 내세워도 자국 산업이 큰 피해를 입지 않는 범위에서 실행전략을 짜고 있다. 탄소감축도 중요하지만 국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부가 탄소세 도입 등 탄소중립 전략을 세우면서 얼마나 많은 기업의 의견을 듣고 피해 최소화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의견수렴도 없었다면 기업 목소리부터 듣는 게 순서다. 산업의 적응력을 도외시한 탄소중립은 ‘자해적 모험’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