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스라엘과 수니파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가깝고도 먼 나라’다. 시오니즘과 반(反)유대주의 간 갈등으로 외교 관계가 없고, 직항노선도 없다. 이집트 같은 제3국을 경유해야 갈 수 있다. 지난 8월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수교하며 두바이~텔아비브 항공노선이 생긴 게 화제가 된 이유다.

이런 양국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소식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22일 사우디를 극비리에 방문해 사우디 지도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유럽·중동을 순방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만났다. 네타냐후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전용기를 추적한 결과, 홍해연안 네옴에 들렀다는 첩보 영화물을 연상시키는 뉴스였다. 외교 관계 수립, 공동 관심사인 이란 문제 등 할 얘기가 많았을 것이다.

‘세계의 화약고’라는 중동지역에도 이처럼 중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8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UAE, 바레인, 수단 등 수니파 3국이 수교에 합의한 것이 징검다리가 됐다. 이번엔 사우디 차례다.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로서는 2015년 이란 핵협정 체결 이후 시아파 맹주 이란의 급부상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이란은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완화되고 석유 수출이 급증하며 2016년 경제성장률이 13.4%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란의 재부상이 두렵기는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란 핵협정이 트럼프 미 대통령에 의해 파기되긴 했지만,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는 예정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35세의 젊은 군주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도하는 사우디 국가개혁에도 ‘이스라엘과의 화해, 이란 삼각 포위’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는 ‘석유 이후’에 대비해 원전에 약 100조원, 인공지능(AI) 분야에 270조원, 네옴 신도시 등 건설에 600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그러니 같은 이슬람 국가라고 해도 1400년간 으르렁대 온 시아파 이란보다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더 필요했는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이나 사우디나 성경 속 대홍수 이후 사실상 인류의 조상이 된 노아의 첫째 아들 ‘셈’의 후손이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가 국교를 수립한다면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캠프데이비드 협정처럼 한 획을 그을 수 있다. 그 공(功)을 트럼프 대통령이 챙길 것이다. 이번 미 대선 결과를 떠나 4년 뒤 선거에 재도전할 것이란 그의 다짐이 허투루 들리지만 않는 이유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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