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비트코인과 시뇨리지

고대 금속화폐는 수시로 무게와 순도가 조작될 위험에 처했다. 화폐 발행자들은 이를 악용했다. BC 6세기 아테네의 지도자였던 솔론은 화폐 발행 시 이익을 챙기는 ‘주조차익(시뇨리지)’을 처음으로 관례화했다. 당시 은(銀) 1달란트는 6000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지만, 솔론은 같은 무게의 은으로 6300드라크마어치 은화를 주조해 5%를 챙긴 것이다.

로마 황제들은 은화의 은 함유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각종 토목공사와 사치를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 로마 은화는 68년 은 함량이 90%이던 것이 211년에는 50%로 뚝 떨어졌다. 갈리에누스 황제 말기인 268년에는 은 함량이 고작 4%까지 곤두박질쳤다.

중세 이후에는 화폐 무게를 줄여 발행권자가 이익을 취하는 사례가 많았다. 원래 영국은 1파운드 무게의 은으로 120펜스의 주화를 만들었지만 15세기엔 같은 중량으로 두 배인 240펜스를 주조했다. 화폐를 쪼개고 잘라 사용하는 관습도 광범위하게 퍼져 ‘페소’ ‘펜스’ 등 ‘조각(piece)’에서 유래한 화폐단위들이 등장했다. 중국 원나라는 제조원가가 적게 들면서 공급을 맘껏 늘릴 수 있는 지폐인 ‘원보초(元寶)’를 남발했다.

오랫동안 화폐 발행의 주조차익은 정부나 중앙은행의 당연한 독점 권한으로 인식됐다. 현대에도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달러화를 찍으면서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 경제학자 에드가 파이게는 1964년 이후 미국이 매년 60억~70억달러 규모 주조차익을 얻었다고 추산했다. 2010년대엔 연간 달러화 발행량(900억달러)에 연평균 물가상승률(연 1.6%), 국채 매입 규모 등을 감안해 연간 주조차익이 최대 650억달러에 이를 것이란 추정도 나왔다.

화폐에 대한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며 등장한 것이 가상화폐 비트코인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채굴’해 ‘발행’되는 비트코인은 발행한도가 정해져 있다. 태생부터 중앙은행의 독점적 화폐발행권과 주조차익을 부정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비트코인을 화폐라기보다 금, 석유 같은 상품으로 보기도 한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한 달 새 50% 가까이 뛰며 어제 2년10개월 만에 2000만원을 넘어섰다. 비트코인 재부상에는 달러화 약세가 한몫했다. 코로나19로 미국이 엄청난 돈을 풀었고, 조 바이든 정권 등장으로 달러화 약세 전망이 강해져서다. 비트코인 위상이 더 높아진다면 주조차익의 종말도 빨라지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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