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21세기 상소문

사대부의 나라를 자처한 조선은 언로(言路)를 보장했다. 대표적인 게 삼사(三司)와 상소(上疏) 제도다. 삼사는 왕에게 충언을 간하는 사간원, 관원을 규찰하고 기강·풍속을 바로잡는 사헌부, 왕의 자문에 응하는 홍문관을 일컫는다. 모름지기 조선시대 정승까지 오르려면 한 번쯤은 이곳을 거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수시로 상소를 올려 왕에게 할 말을 전했다.

상소는 관직에 있는 이들뿐 아니라 일반 유생들까지 할 말을 할 수 있게 한 제도였다. 조선시대 문인이라면 써야 할 일곱 가지 글에 ‘소(疏)’가 꼽힐 정도였다. 조선왕조 500년간 관료와 학자, 유생들이 올린 상소는 수만 건에 달한다.

중종에게 “군자를 등용하고 소인을 물리치옵소서”라고 간언한 조광조의 상소, “치욕을 잊고 개혁을 단행하소서”라고 인조에게 올린 최명길의 상소, 효종 때 “북벌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라고 주장한 윤휴의 상소 등은 명문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왕이 늘 상소를 기꺼이 받아들인 건 아니다. 연산군은 상소뿐 아니라 삼사 관료들까지 처벌해 그 기능을 사실상 없애기도 했다. 그래서 상소할 때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목을 쳐달라’는 ‘지부상소(持斧上疏)’라는 것도 있었다. 목을 내놓고 상소를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게 선조 때 “왜국 사신의 목을 베고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조헌의 상소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선조는 결국 임진왜란 때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야 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시무 7조’란 글이 세간에 화제다. 이 글은 조선시대 상소문 형태의 글로 집값 폭등 등 정부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 문재인 대통령에게 세금을 감하고, 명분보다 실리 외교에 임하고, 신하를 가려쓰라는 등 일곱 가지를 직언한다. ‘현미’ ‘해찬’ ‘미애’ 등 현 정부 실세의 이름을 따 두운(頭韻)도 살렸다. 어지간히 정성 들여 쓴 글이 아니다.

요즘 정권 핵심인사들이 사법부와 검찰, 감사원 등에서 맘에 들지 않는 판결, 조사 등이 나올 때마다 마구잡이로 비판하는 일이 늘고 있다. 외신까지 주목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비판을 뿜어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향한 비판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이번 ‘상소문’을 어떻게 처리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다.

김현석 논설위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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