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원칙 없이 임의로 행사하고 있다는 감사원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이 어제 공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분 보유 기업의 이사 선임 때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있는 경우에만 반대할 수 있도록 규정을 세워놓고도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한 기업의 이사 후보에 대해선 수년에 걸쳐 일관성 없이 찬성과 반대를 반복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멋대로 운영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도입 당시부터 우려가 컸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가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steward)처럼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자율지침이다. 취지는 좋지만 국민연금처럼 독립성이 떨어지는 경우엔 정부의 정책목적에 휘둘려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2018년 7월 도입을 강행했다. 그랬으면 더욱 엄정하게 행사했어야 했다. 이번 감사 결과를 보면 “이러려고 그 반대를 무릅쓰고 도입했나”라는 탄식이 나올 뿐이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가 부실하게 운영된 것은 정부가 본래 취지와는 다른 의도를 갖고 도입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선량한 재산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구조 등 기업의 의사결정에 정부가 간섭하기 위해 도입한 탓이란 얘기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관심사가 아닌 기업 주총 안건에는 일관성도, 명분도 없는 찬반 투표를 한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귤화위지·橘化爲枳)’는 고사가 있듯이, 선진국 자본시장 제도가 한국에 들어오면 이류, 삼류 규제로 전락하기 일쑤다.

기왕에 도입한 제도라면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국내 기업이 313개사(작년 말 기준)에 달한다. 지분 10% 이상인 기업도 98개사나 된다. 주요 기업들의 경영에 국민연금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국민연금이 중립적이고 투명하게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 노후자금인 만큼 국민연금은 운용수익 극대화라는 기본목표도 잊어선 안 된다. 지금처럼 엉터리로 운영하고, 혹여 정부가 기업을 좌지우지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요량이라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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