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또 불거진 서울대 폐지론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대부터 있었다. 국공립대를 통합해 평준화하면 입시지옥과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게 폐지론의 골자였다. 반대쪽에서는 서울대를 없애도 제2, 제3의 대학이 그 자리에 오르므로 차라리 경쟁력 있는 대학들을 서울대 수준으로 키우는 게 국가 발전에 유리하다고 반박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이 문제가 정치 이슈로 변질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서울대 폐지론을 공론화했다. 민주노동당은 총선 공약으로 이를 내걸었다. 2011년 서울대가 법인화돼 국가 개입이 불가능해진 뒤에도 서울대 폐지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2012년에는 당시 야당인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이 “서울대 명칭을 없애고 지방 국립대를 하나로 묶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의 모든 국립대학이 ‘파리1대학, 2대학…’ 식으로 개편된 사례를 들었다. 2014년 이른바 ‘진보진영 교육감’들이 공통으로 내걸었던 대학평준화 공약에 대해 국민 53.2%는 ‘대학의 하향평준화가 우려된다’며 반대했다.

최근 들어 여권의 ‘수도 이전론’과 맞물려 ‘서울대 지방 이전론’과 ‘폐지론’이 또 불거지고 있다. 이번엔 부동산 정책 실패의 후폭풍이 겹쳤다. “사교육 안 받고 ‘흙수저 독학’으로 입학했는데 집값 상승의 주범인 적폐로 몰리다니 황당하다”(서울대 재학생)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이 “국가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큰 그림보다 눈앞의 정치논리에 매몰된 단견”이라고 지적해도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인들은 못 들은 척한다.

일부 정치권이 거론하는 프랑스 교육제도를 보면, 국립대 이외에 ‘그랑제콜’이라는 최고 고등교육기관이 따로 있다. 여기에 입학하려면 고교에서 상위 4% 안에 들어야 한다. 그랑제콜 출신은 프랑스의 정치·경제·사회 분야 엘리트로 국가를 이끈다. 이런 사실은 쏙 빼고 무조건 평등만 주장하면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서울대가 국제 경쟁력도 없으면서 모든 병폐의 근원이니 없애라”고 질타한다. 그러나 한때 100위 밖이었던 서울대의 세계 대학 순위는 올해 37위(영국 고등교육평가기관 QS 발표)까지 올랐다. 1등을 끌어내리는 ‘마이너스 발상’으로는 위로 올라갈 수 없다. 다른 대학의 수준을 끌어올려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플러스 발상’으로 문제를 푸는 게 옳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