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트럼프 추락의 교훈
요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밀린다. 전국 지지율 격차는 10%포인트 넘게 벌어진다.

미 대선 승부처인 경합주 여론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애리조나,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6개 핵심 경합주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모두 뒤진다. 최근엔 공화당 아성인 텍사스, 조지아 같은 남부벨트에서도 바이든에게 추월당했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오고 있다.

[특파원 칼럼] 트럼프 추락의 교훈
설상가상으로 친정인 공화당에서마저 이탈표가 속출하고 있다. 흑인 최초 국무장관을 지낸 공화당 거물 콜린 파월은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아들 부시’(조지 W 부시) 행정부에 몸담았던 인사들은 ‘노(no) 트럼프’를 선언하며 바이든 후원 모임까지 결성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선이 3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자체 모델을 통해 올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확률을 7%, 바이든이 승리할 확률을 93%로 예측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됐던 2월 초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가도엔 거칠 게 없어 보였다. 미 경제는 감세와 규제완화로 역대 최장기 호황을 이어갔고, 증시는 사상 최고 수준을 넘나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엔 민주당도 초당적으로 공감했고, 미·중 무역갈등은 1단계 합의가 이뤄지면서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봉합된 상태였다.

상황을 돌변하게 만든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대처였다. 코로나19로 미국에선 벌써 13만 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그런데도 언제 코로나19가 종식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미국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백인 경찰의 강압적인 체포 과정에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미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무엇보다 ‘나만 옳다’는 독선적 태도가 문제였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트럼프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했다. 코로나19를 별것 아닌 감기인 양 취급하고,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게임 체인저’인 양 떠벌리고, 방역당국의 경고에도 성급하게 ‘경제 재개’를 서둘러 화를 키웠다.

화합과 통합 대신 ‘편가르기’를 조장하며 분열을 부추긴 것도 실책이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미 전역에 항의 시위가 번졌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상처를 다독이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시위대를 ‘폭도’나 ‘극좌파’로 몰아 공격했다.

이뿐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음에 들지 않는 법원 판결에 독설을 퍼붓고, 측근을 수사하던 검사장과 청문회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관료들을 쫓아내고, 비판 언론엔 ‘가짜 뉴스’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러면서 수감 직전의 측근을 사실상 사면하는 등 자기 편엔 관대했다. 상식이 아니라 진영 논리를 앞세운 결과, 극성 지지층은 열광했을지 몰라도 중도층은 등을 돌렸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은 ‘적폐청산(Drain the swamp)’ 구호로 재미를 봤다. 그 기억 때문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4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걸핏하면 전 정권(버락 오바마 정부) 탓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최고의 ‘기득권’이 된 지금은 이 논리가 먹혀들기 어려운데도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추락은 이 모든 실책들이 쌓인 결과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의 우세는 바이든이 잘해서라기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멸한 결과에 가깝다. 공화당 내에서조차 “트럼프 최대의 적은 트럼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독선과 오만, 편가르기, 남탓,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역풍을 부른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정치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재선 실패 카터·부시와 비슷한 트럼프 지지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은 재선에 실패한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비슷한 수준이다.

갤럽이 지난달 8~30일 실시해 이달 초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8%였다.

1980년 이후 취임한 미국 대통령의 임기 4년차 6월 지지율을 보면, 1992년 아버지 부시가 37%, 1980년 카터가 32%였다. 이들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처럼 지지율이 40%에도 못 미쳤고 그해 11월 대선에서 패배하며 단임 대통령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반면 1980년 이후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은 대선을 4개월가량 앞둔 시점에서 모두 트럼프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높았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46%, 2004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는 49%였고, 1996년 빌 클린턴과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각 55%와 54%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을 찾으려면 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해 6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40% 지지율에 그쳤지만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