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칼럼] 세대를 잇는 산업혁명
반(反)기업 정서가 팽배한 현실에서 가업승계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기업 상속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창업자의 기업가 정신을 그대로 자식대에 물려주고 회사를 키워가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회사를 매각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결심하는 창업자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100년 기업이 나올 수 없고, 세계적 기업을 꿈꾸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 된다.

규제 벗어나기 힘든 가업승계

그러는 사이 기업 경쟁력은 날로 추락해간다. 특히 중견·중소기업은 오너 1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이들의 업무까지 과중하다 보니 다른 분야와의 융합 혁신은 시도하기도 어렵다. 그 결과 국내외 대형 기업, 심지어 떠오르는 스타트업에 공격당하고 인수될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가업승계가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과거와는 전혀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산업혁명기에는 더욱 그렇다. 새로운 먹거리를 개척할 기회를 자식들에게 주는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 회사라는 자산이 아니라 창업주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네트워크를 물려주는 것이다.

창업 당대는 산업화에 힘입어 물리적 자산을 만들어냈지만 이 자산에서 파생되는 데이터와 노하우를 자산화할 여유가 없었다. 이 데이터와 노하우가 자식대가 새롭게 도전할 발판이다.

세계 2위의 쿠킹웨어 업체인 메이어(Meyer Industries)의 사례를 보자. 창업자인 스탠리 쳉의 아들 빈센트 쳉은 30대 중반이던 2015년께 아버지에게 사내 스타트업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가전기기 등이 모두 인터넷에 연결돼 변하고 있는데 아날로그 냄비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아버지도 전통요리 사업을 새롭게 뒤흔들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마존 출신 엔지니어와 미쉐린의 스타 셰프까지 참여해 만든 것이 헤스탄큐(Hestan Cue)다. 모바일 앱을 이용한 레시피와 연동해 모든 요리법과 조리 온도, 시간까지 알려주는 스마트 프라이팬이다. 세계적 히트상품을 성공시킨 빈센트는 현재 헤스탄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하고 있다. (데이비드 로완 《디스럽터》 참조)

인맥 노하우 데이터를 전수해야

말자상속(末子相續)의 풍속을 갖고 있었던 유목민들의 지혜에서 어쩌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말이나 양에게 먹일 풀이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자식들이 결혼하면 차례로 다른 곳으로 보냈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독립한 자식들이 전쟁 때면 자기 부족을 이끌고 모두 참전한다는 것이다. 아들로서가 아니라 엄연히 부족장의 자격으로!

가업승계라는 과제는 추진하되 회사의 미래 경쟁력과 자식들의 경영수업을 위해 이제는 스스로 개척할 기회를 줘야 한다. 모바일, AI, 스마트공장에 더 관심이 있는 자식들에게 스타트업으로 기회를 줘라. 그렇게 성공해야 명실상부한 부족장이 된다.

사실 자세히 보면 험지로 내보내는 것도 아니다. 빈센트도 이미 회사가 갖고 있는 유통망과 하드웨어에 약간의 기술을 더했다. 다른 스타트업은 도저히 꿈꿔볼 수도 없는 영역이다. 또 회사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기 때문에 경쟁우위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특히 2세 경영인 자신이 마련한 종잣돈으로 출범시킨 독립적인 스타트업이라면 누구도 상속 승계 등의 시비를 걸기 어렵다. 가업을 승계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성공하면 더할 나위 없다. 오히려 창업자와 자식 세대가 새로운 영역에서 묘한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