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일하는 국회법' 만들어야 일하나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김형오 18대 국회의장·2008년 7월) “19대 국회는 특권은 없고 헌신과 고뇌만 있는, 일하는 국회상을 만들자.”(강창희 19대 국회의장·2012년 7월) “일하는 국회, 생산적인 의정활동으로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한다.”(정세균 20대 국회의장·2016년 6월)

지난 18·19·20대 국회의장들이 국회 개원사에서 한 말들이다. 하나같이 일하는 국회를 강조했다. 국회가 정파적 이해를 떠나 민생을 챙기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아들여 입법에 매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국회의장들은 12년째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국회가 할 일을 하지 않은 탓이다.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36.6%에 그쳤다. 19대(43.9%)에 크게 못 미친다. 오는 29일까지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1만5256건이 자동 폐기된다.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로 ‘최악의 국회’란 오명이 뒤따를 게 뻔하다. 법안 처리율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이미 ‘규제공화국’인 한국에서 국민과 기업을 추가로 옥죄는 법안은 없느니만 못하다.

12년째 반복되는 개원사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한 경제활성화법까지 줄줄이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이 중 상당수는 이미 18·19대 국회를 거치며 발의와 폐기를 반복해왔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실상이다. 최초 발의된 지 9년이 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원격의료 관련 의료법 개정안, SW산업진흥법 등이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들 경제활성화법에는 뒷전인 국회가 또 다른 법을 제정한다고 난리다. 이름하여 ‘일하는 국회법’이다. 정병국 미래통합당 의원 등 국회의원 25명이 지난달 10일 국회법 개정안 및 국회윤리조사위원회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신속한 원 구성과 매월 임시회 개회 및 본회의 2회 의무화, 회의 불출석 국회의원에 대한 페널티 도입 등이 핵심이다.

정작 해야 할 일은 안 하면서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니 의구심부터 들지만 실제 해외에서는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엄격히 제재하고 있다. 프랑스 등에서는 세 번 이상 상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상임위원 자격을 박탈하고 상습적으로 불출석하면 월급의 40%(벨기에)를 깎는다. 호주와 프랑스 등에서는 일정 횟수 이상 본회의에 불출석하면 제명까지 한다. 4·15총선에서 180석의 슈퍼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이 법을 처리할 태세다.

포스트 코로나 입법 나서야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6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21대 국회는 새 국회가 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 일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가 될지 모르지만 30일 출범하는 21대 국회의 의장도 일하는 국회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일하는 국회법’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지만 국회는 할 일을 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출범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재도약을 지원할 법안이 줄줄이 상임위에 올라올 것이다. 코로나19에 지친 국민과 기업은 경제활성화법의 국회 통과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국민 10명 중 8명(80.8%)은 국회의원의 ‘무노동 무임금’에 찬성하고 있고, 국민 77.5%는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언제까지 ‘일하는 국회’를 강조하는 국회의장의 개원사를 들을 것인가. 이 대표의 말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