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40)] 성(性) 중립 언어
동성 결혼은 2001년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허용됐다. 필자는 헤이그에서 열린 동성 결혼식을 참관한 적이 있다. 시청 공무원이 두 여자(?)의 결혼식을 주재하고 있었다. “마리아 아데마에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마르티나 마스를 당신의 법적 동반자로 맞이하겠습니까?” “예.” 다른 여자로부터도 “예”라는 대답을 들은 그는 “나는 두 사람이 동반자임을 선언합니다”라고 선포했다.

최근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공식 문서에 남편(husband)과 아내(wife)라는 용어 대신 성중립 용어인 배우자(spouse) 또는 파트너(partner)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용어도 바뀌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학교 서류에 ‘아버지’ ‘어머니’ 대신 ‘부모1’ ‘부모2’로 표기한다. 순서는 가정의 자율에 맡긴다. 절대다수의 가정에서 부모의 성 역할이 구분되는 현실을 무시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으나 가족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동성 부부를 부모로 둔 아이들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바뀌었다.

성소수자를 배려하는 언어혁명이 진행 중이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이분법적 남녀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생물학적인 남성과 여성 외에도 성전환한 남성 또는 여성, 자신의 성정체성을 지정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에 속하는 다양한 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아버지, 어머니 대신 부모1, 부모2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40)] 성(性) 중립 언어
오늘날 호주를 필두로 ‘제3의 성’을 추가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호주에서는 출생증명서와 여권에 제3의 성을 표기할 수 있다. 2016년 연방선거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남녀 이외에 ‘Mx(Middlesex·중성)’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고 통계청은 ‘기타(other)’란을 두었다. 2013년 독일은 유럽 최초로 제3의 성을 인정했다. 출생신고서에 남녀 중 하나를 기재해야 하는 규정을 공란으로 둘 수 있게 바꿨다. 아이가 성장해 자신의 성을 스스로 선택하거나 남녀라는 이분법적 성별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캐나다,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몰타, 네팔, 미국(캘리포니아 뉴욕 등 일부 주)도 뒤를 이었다.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도 진행 중이다. 과거 미국 뉴욕 지하철과 버스에서는 ‘신사 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라는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승객 여러분(passengers)’이라는 중립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영국 런던 지하철에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Hello, everyone)’로 바뀌었고 네덜란드에서는 ‘여행자 여러분(best travelers)’이 사용되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경찰관은 ‘policeman’에서 ‘police officer’로, 신입생은 ‘freshman’에서 ‘first-year student’로 바뀌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국가(國歌) 가사까지 바뀌고 있다. 2018년 캐나다는 국가가 작곡된 지 109년 만에 가사 일부를 바꿨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를 격려하기 위한 ‘모든 그대의 아들들’을 ‘우리 모두’로 바꾼 것. 오스트리아는 ‘훌륭한 아들들’이란 표현을 ‘훌륭한 딸들과 아들들’로, ‘형제의 성가대’는 ‘기쁨의 성가대’로 바꿨다.

언어를 바꾸면 생각도 바뀐다

변경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적 논쟁과 국론 분열이 야기됐다. 2018년 독일에서는 국가 ‘독일의 노래’ 가사 중 ‘아버지 나라(fatherland)’를 ‘고국(homeland)’으로, ‘형제처럼’을 ‘용기있게’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는데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반대로 무산됐다.

영어 대명사와 관련해서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 엄마를 사랑한다(Everyone loves their mother)’는 표현에 영문법 학자들은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their는 복수 대명사이므로 ‘Everyone loves his mother’가 맞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남성형 ‘his’가 남녀를 총칭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남성 대명사가 여성을 포괄한 것은 16세기 라틴어에서다. 18세기 영문법에 차용된 이래 오랫동안 사용돼왔다. 예컨대 ‘Each person must pay his taxes’라는 법규정은 여성에게도 적용됐다. 19세기 여성 참정권자들은 이를 원용해 ‘he’가 여성을 포함하므로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는 성이 불명확하거나 성을 언급하고 싶지 않을 때 ‘they’가 ‘he’나 ‘she’ 대신 자주 쓰인다.

우리 생활에서도 차별적 언어가 사용된다. 미망인, 처녀작, 집사람, 친가와 외가, 직원과 여직원, 안사람과 바깥사람 등. 오랜 가부장제의 영향일 것이다.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의 말처럼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언어를 바꾸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바뀐다. 평등한 언어는 보다 평등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여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성차별 언어를 성중립 또는 성평등 언어로 바꿔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