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코로나 면책' 立法만으로 안된다
소상공인 긴급자금 대출이 얼마나 다급했을까. 신청에서 통장 입금까지 4~6주 걸린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직접 현장간담회를 주재했다. “대출 과정에서 고의성 없는 과실은 과감하게 면책(免責)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을 최운열 의원 대표발의로 지난달 31일 국회에 제출했다. ‘재난지원 업무를 적극 처리한 결과에 대해 고의나 중대 과실이 없는 경우 징계·제재 등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취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민생의 고통을 최대한 줄여보려는 당정의 의지가 ‘공무원 면책 입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대출 보증심사 담당자를 ‘뛰게 할 수 있는’ 면책 조항은 긴급자금 1000만원 대출에 목매는 소상공인들에게 희망의 끈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짙게 드리운 '면책 불신'

하지만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시비 이후 표면화된 ‘변양호 신드롬’의 그림자가 공무원 사회에 길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 걸린다. 민원인의 고충을 적극 해결하거나 국가 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쪽으로 발 벗고 나섰다가 혼자만 된통 책임을 뒤집어쓸 것 같은 두려움 말이다. ‘면책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 ‘해석에 따라 나중에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공무원 개인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해 부담스럽다’ 등 공무원들의 항변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직업공무원에게는 신분 보장이 최대 인센티브인데 굳이 나서서 문제를 만들 이유가 있겠느냐는 얘기는 인지상정으로 다가온다.

이 때문에 공무원 면책은 규제 완화 이슈만 나오면 수면 위로 잠시 떠올랐다가 다시 잠복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그 과정에서 감사원이 ‘적극행정 면책제’를 도입(2008년)하고, 면책 조항을 넣어 감사원법을 개정(2015년)하는 등 진전은 있었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명문화된 법률사항을 신뢰조차 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힘이 쭉 빠진다.

특히 이번 법 개정안에선 ‘면책 입법’ 대상에 대출 보증심사 등을 맡는 금융회사 임직원을 포함시켰다는 점을 잘 봐야 한다. 과실만 없으면 된다지만, 서슬 퍼런 금융감독원 검사 앞에 벌벌 떨던 금융회사 직원들이 얼마나 믿고 움직일지 의문이다.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섰다가 사후에 금감원 징계를 받은 전례가 있어서다.

실효적 제도개선 주목해야

공무원을 뛰게 하는 수단이 ‘면책 입법’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게 그동안의 교훈이다. 법령사항으로 만들어놓으면 알아서 되겠지 하는 ‘입법만능주의’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지방의 한 신용보증재단처럼 코로나 사태로 중소기업 등의 보증 수요가 급증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보증업무 인력을 대폭 늘려 선제적으로 대처한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금융회사의 대출 관련 심사평가 능력을 향상시키고 처리 속도를 높여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응하는 게 최선이란 얘기다.

손쉬운 담보만 요구하고, 경영난에 직면한 기업의 대출금 회수에 급급해 하는 등 ‘비 올 때 우산 뺏는’ 식의 행태로는 안 된다. 리스크 관리와 관련한 금융회사의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감사원도 적발 위주에서 제도 개선을 유도하는 식으로 ‘감사의 질’을 높이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극행정과 그 결과에 대해 획기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인사혁신처의 제도 보완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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