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바이러스가 예술에 대한 도전 멈추게 해선 안돼
요즘 소설 《페스트》가 화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이 마치 이 소설에 나온 것과 같다는 이유에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 문학과 예술 속 상상을 만나는 초현실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알베르 카뮈가 《페스트》를 발표한 것은 그의 나이 30대 초반의 일이다. 1913년 프랑스령이던 알제리의 몽드비에서 태어난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전사하자, 청각장애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불우한 유년을 보냈다. 학업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고학으로 대학까지 졸업하지만, 결핵을 앓았던 탓에 원하던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문기자로 일했다. 20대 후반 발표한 《이방인》을 필두로 《시지프의 신화》 《오해》 《칼리굴라》 《페스트》 그리고 《전락》을 내놓으며 마흔세 살에 노벨문학상을 받지만, 불과 3년 뒤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카뮈는 부조리 문학, 허무주의적 성향으로 유명하다. 《페스트》도 마찬가지다. 감염병이 창궐하자 외부와 단절된 폐쇄도시 오랑의 풍경을 특유의 문체에 담아 그려냈다. 병에 맞서 싸우다 죽어가는 사람들, 좌절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끝까지 싸워 이겨내는 인물의 사연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에서 그는 행복에 대한 인간의 의지야말로 절망에 맞서는 최선의 선택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페스트》는 창작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2016년 막을 올렸는데 손호영, 김다현, 오소연 등이 메인 롤을 맡았다. 다른 장르의 콘텐츠를 가져와 무대적 문법에 맞춰 전개하는 ‘해체’와 ‘재구성’의 재미는 이 작품에서도 색다른 묘미를 선보이는 원동력이 된다. 오랑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은 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무대 위 시간대는 미래로 변화시켰다. 페스트의 공상과학소설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미래 이미지들로 가득한 첨단 도시 풍경을 선보이는데, 미래 인간사회가 얼마나 허무하게 감염병으로 무너져내리는지 신랄하게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우리 삶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뉴 노멀’이 확장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문화산업에서 가장 타격이 심한 분야가 공연이다. 방송이나 영화와 달리 무대와 객석이 바탕이 되는 공연은 뾰쪽한 대안이 없다. 공연의 영상화가 회자되지만 간단치 않다. 영상물의 완성도와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스트리밍 서비스의 원활함과 사용료 징수가 가능한 환경 구축 등 선결 과제가 산더미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멈춰서도, 간과해서도 안 될 과제이자 책무라는 점이다.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묘수를 고민해야 한다. 배부르고 여유 있을 때나 즐기는 것이 문화예술이라는 전근대적 착오는 없어야 한다. 관객들 사이 2m 간격 유지에 대한 벌금이나 경고 같은 규제정책 못지않게 문화예술이 존속될 수 있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훗날 문화산업을 재건하려고 해도, 이미 전문 인력들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이후일 수 있다. 결코 나중으로 미뤄둘 사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