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최초의 국산 신약 '활명수'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보름 전인 1897년 9월 25일, 우리나라 최초의 제약회사 동화약품(옛 동화약방)이 서울에서 탄생했다. 창업자는 궁중 선전관(지금의 대통령 경호관) 출신인 민병호 씨였다. 그는 궁중의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해 개발한 소화제 ‘활명수(活命水·생명을 살리는 물)’를 판매했다.

한국 최초의 신약 활명수는 마시기 편하고 보관하기도 좋았다. 달여 먹는 탕약에만 의존하던 소화기 질환자들에게는 ‘신비의 명약’이었다. 1910년 한 병 값이 쌀 넉 되에 해당하는 40전이었다. 요즘 돈으로 2만원이 넘었다. 유사품이 쏟아지자 1910년 ‘부채표’를 상표로 등록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상표다.

민씨의 아들 민강 씨는 활명수 수익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 1919년 투옥됐다가 석방된 뒤에도 상하이임시정부의 비밀 행정기관인 서울 연통부를 본사에 두고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36년 손기정·남승룡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동메달을 땄을 때는 신문에 축하 광고를 실었다. 그는 그해 옥고 후유증으로 타계했다.

사세가 기울자 독립운동 동지인 윤창식 씨가 회사를 이어받아 재건에 나섰고, 1937년 만주에 활명수를 특허출원하며 해외에 진출했다. 이로써 국외에 상표를 등록한 국내 제품 1호가 됐다. 1996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제약회사·등록상표·의약품 등 기네스북 4개 부문에 등재됐다.

활명수의 연간 생산량은 약 1억 병, 누적 판매량은 83억5500여만 병에 이른다. 지속성장연구소가 어제 발표한 기업 분석에 따르면 국내 1000대 상장사의 ‘평균 연령’은 36세다. 이 중 60세 이상은 110곳, 80세 이상은 6곳, 100세를 넘긴 장수 기업은 동화약품(123년)과 경방(101년)뿐이다.

가난한 시절 급체와 설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물’이 돼 준 활명수는 10가지 생약 성분을 유지하며 123년째 ‘약업보국(藥業報國) 정신’을 부챗살처럼 펼치고 있다. 조지훈 시인이 동화약품 사가(社歌)의 가사를 왜 ‘어두운 시대에 횃불을 들고서/겨레의 체질에 맞는 민중의 약을 찾아/그 보람 조국의 발전에 바쳤네/이것이 동화의 정신 빛나는 전통’이라고 썼는지 알 것 같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