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뒷북' WHO
“동물을 매개체로 하는 가공할 만한 전염병이 조만간 닥쳐올 것이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수백만 명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6대 사무총장이 생전에 세계 의학계에 남긴 경고다. 그는 2006년 5월 과로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소아마비, 결핵, 한센병 등 각종 난치병과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한 백신 개발 지원에 매진했다.

그의 유산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신종플루) 발병 때 큰 힘을 발휘했다. WHO는 그해 4월 돼지 독감에서 기원한 신종플루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 등과 백신 개발에 나섰다. 6월에는 선제적으로 전염병 경보 최고 단계인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고 각국에 백신 비축을 권고했다.

일각에서는 팬데믹을 일찍 선언해 과도한 공포감을 조성했다고 비난했지만 WHO의 선제적 조치는 많은 목숨을 구했다. 백신 개발을 독려한 덕분에 수백만 명이 감염됐지만 사망자는 1만8500여 명선이었다. 당시 한국은 늑장 대응 탓에 백신과 치료제를 제때 확보하지 못해 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큰 피해(감염 75만 명, 사망자 263명)를 입었다.

WHO가 어제 ‘코로나19 팬데믹’을 공식 선언했다. 1968년 홍콩독감(약 80만 명 사망)과 2009년 신종플루 이후 세 번째다.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12만여 명, 사망자가 5000여 명 발생한 뒤여서 ‘뒷북 대응’이란 비난이 거세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2017년 중국의 지원으로 수장에 올랐다. 중국으로부터 10년간 600억위안(약 10조원) 투자 약속도 받았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중국 입장을 대변하기에 바빴다.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지는데도 중국 눈치를 보며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포를 거부했다.

팬데믹 초기인 2월 9일에야 중국에 조사팀을 보냈지만 정작 발병지인 후베이성 우한은 제외했다. 그러고는 “중국이 특별하고 가장 야심차며 민첩한 조치를 했다. 세계가 중국에 빚을 지고 있다”며 중국을 편들었다.

국제 청원사이트인 체인지에는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이 줄을 잇고 있다. WHO가 ‘Woo Han Organization(우한기구)’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질병을 질병으로 보지 않고 정치로 본 결과 세계인의 보건과 WHO의 명성이 한꺼번에 위협받고 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