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탐사 가능케한 흑인 女영웅 넷 이야기
뒤늦은 '의회 황금 훈장'에 꾸준한 관심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 퍼스트룩 대표 >
[문화의 향기] 차별과 편견의 장벽 무너뜨린 '히든 피겨스'

미국 의회가 수여하는 ‘의회 황금 훈장’이란 것이 있다. 1776년 조지 워싱턴이 첫 수훈자인 이 훈장은 수상자 선정 과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훈장 수여자를 추대하는 결의안이 발의되고, 이것이 미 의회 하원과 상원을 모두 통과해야만 비로소 수상이 결정된다고 한다. ‘의회 황금 훈장’을 미국에서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 부르는 이유와 그 무게감을 짐작하게 한다.

작년 11월 미국 여성 과학자 네 명이 50년 만에 공로를 인정받아 미 의회로부터 황금 훈장을 받았다.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 산하 랭글리연구소에서 일한 캐서린 존슨, 크리스틴 다든,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이들 네 사람의 뒤늦은 수상이 특별한 이유는 흑인 여성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미국과 옛 소련의 우주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데 기여한 최고의 인재들이었지만, 흑인과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던 시대를 살았기에 일찍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 의회보다 앞서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진 것은 영화였다. ‘히든 피겨스’란 다소 어렵고 구미가 당기지 않는 제목의 영화로, 실제론 한 번 보면 또 보고 싶은 ‘히든 카드’ 같은 재미와 감동을 갖춘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다.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각색상·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뿐 아니라 2억달러가 넘는 흥행기록을 세울 만큼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뒤늦게 영화를 접한 많은 관객이 예상치 못한 인생 영화를 만났다며 여전히 따끈따끈한 리뷰와 평점을 꾸준히 남기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매력은 전적으로 실존인물인 ‘숨겨진 영웅들’에 있다. 연구소 최고의 수학자 캐서린은 청소부로 오해받기 일쑤고, 연구소 밖 800m 거리에 있는 유색인종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매일 왕복 1.6㎞를 뜀박질한다. 백인 과학자와 같은 커피포트를 써서는 안 되며, 여성은 회의에 참석 못 한다는 기막힌 규정을 듣는 와중에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최초 우주 궤도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수학 공식을 찾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나사 내부에서도 가장 혹독한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진 엔지니어를 꿈꾼 메리는 필수 강의를 듣기 위해 학교에 가지만 백인만 가득한 학교에서 출입을 거절당한다. 그는 강의를 듣기 위해 법원에 청원을 내고, 긴 싸움 끝에 입학 허가를 받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최초의 흑인 여성 우주 엔지니어가 돼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간다.

50년 전 나사의 ‘히든 피겨스’들은 여성과 흑인은 우주산업에 기여할 능력이 없다는 세상의 무거운 편견에 용기를 내 맞섰다. 그들은 결코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화장실은 멀고 커피를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우주를 향한 인류의 위대한 첫발에 자신들의 재능이 공헌할 수 있는 그 기회를 스스로 놓지 않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인류는 달에 착륙할 수 있었다.

‘히든 피겨스’는 장벽을 무너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긍정의 에너지로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용기와 강인한 의지를 장착한 채 오늘을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히든 피겨스’에게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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