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인종차별로 번지는 '우한 폐렴' 사태
28일 오전(현지시간) 영국 런던 번화가를 관통하는 지하철 센트럴라인. 고급 상점이 밀집한 옥스퍼드서커스역에서 마스크를 쓴 10여 명의 중국인이 일제히 지하철 안에 들어섰다. 같은 칸에 탄 현지인들의 얼굴엔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일부 현지인은 자리를 피해 다른 칸으로 옮기기도 했다. 자리를 옮기지 않아도 중국인들과 거리를 두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런던은 유럽에서 중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도시 중 하나다. 유럽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도 런던 한복판에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시작된 중국 후베이성 우한을 연결하는 직항편도 운항된다. 영국에서 우한 폐렴 확진 사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는 ‘우한 폐렴 포비아(공포증)’가 영국 등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발병 초기와 달리 최근 우한 폐렴 감염자가 10만 명에 달하고, 조만간 영국인도 감염될지 모른다는 영국 연구진의 발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중국인 관광객이 유럽 전역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마저 인터넷에서 흘러나온다.

현지 언론도 우한 폐렴 포비아가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디언은 최근 칼럼을 통해 “우한 폐렴으로 중국 등 동아시아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커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기숙학교협회도 긴급 성명을 내놨다. 영국에서 유학 중인 중국 학생들이 혐오범죄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경고였다.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유럽에선 모든 아시아인을 중국인으로 바라보는 현지인이 적지 않다. 자녀를 둔 한인 교민사회의 걱정 역시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런던에선 마스크를 일부러 쓰지 않는 한국인이 꽤 있다. 마스크를 썼다가 우한 폐렴 보균자로 인식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인종차별은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행위다. 다만 우한 폐렴이 세계로 확산된 것은 중국 당국이 초기 방역에 실패하고, 정보를 은폐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사태가 진정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설명대로 우한 폐렴의 공식 명칭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바꾼다고 할지라도 아시아인을 향한 편견이나 인종차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모든 유럽 언론은 우한 폐렴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표현하지만 우한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은 빼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과 한마디조차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게 중국 정부의 실체다. 우리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