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부동산 투기론'과 사회초년생의 불안
“비싸지만 지금이라도 사야겠지?”

올해 서른 살이 되면서 부동산 투자를 결심한 친구들이 부쩍 많아졌다. 평소 부동산에 관심도 없던 미혼 친구들이다. 재테크는 적금밖에 모르던 A는 직장 생활 2년 만에 이달 초 서울 석관동의 한 아파트를 6억원에 매입했다. 부모에게 3억원가량 차용증 대출을 받고 주택담보대출과 모은 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마련했다. A가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 건 정부 규제 때문이다. A는 “앞으로 15억원 넘는 주택에는 대출이 안 나오니 9억원 미만 아파트라도 사지 않으면 서울에서 평생 못 살 것 같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투자에 뒤늦게 뛰어든 주변 친구들의 생각은 하나같이 비슷하다. 투기로 한탕 벌겠다는 욕망이라기보다 지금이라도 못 사면 낙오한다는 위기감이 더 큰 것 같다.

B는 원리금과 이자를 매달 소득의 절반 가까이 내는 걸 감수하면서 6억원대 구축 아파트를 사기로 결심했다. 올해 말 결혼을 앞둔 C는 매매를 포기하고 전셋집을 구하기로 했다. 막대한 대출금이 부담돼 전세로 눈을 돌렸다. C는 그러나 “평생 전세살이만 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월급의 절반을 이자로 내는 친구나 어쩔 수 없이 전세를 선택한 친구 모두 조급함,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투기’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이어 “집값 안정을 위해 더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12·16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추가 규제 가능성을 내비쳤다. 같은 날 국토교통부는 홈페이지에 “서울 공급은 충분하고 집값은 안정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집값과 전셋값이 치솟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올 때마다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18번째 나온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엔 불안이 감돌고 있다. 15억원 초과 아파트 대출이 막히면서 9억원 이하 아파트값이 치솟고 있다.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는 대책 발표 후 실거래 내역도 없는데 호가가 1억원 뛰었다. 불안한 무주택자들은 어느 시점에 매입할지 눈치만 보고 있다. 부동산에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이유도 다르지 않다.

규제 일변도의 대책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시장을 언제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공급 확대 등 집값 안정 신호를 확실하게 줘야 하지 않을까. 대책의 약발이 몇 달 정도 지속된 뒤 집값 상승이 재연되는 모습에 지친 사람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막대한 빚을 얻어서라도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이들에게 정부는 그다지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근절하겠다고 한 ‘투기꾼’들이 어쩌면 주변의 ‘장삼이사’가 아니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