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선동이 패배해온 역사
진중권이라는 좌파 논객의 활약이 종횡무진이다. ‘친문 교주’라는 유시민 작가의 조국 사태에 대한 언행을 ‘선동이자 세뇌’라고 직격했다. 유 작가의 유튜브 방송은 ‘망상을 퍼뜨리는 판타지물’이라고 조롱했다. 진씨는 ‘깨시민’ 청취자가 많다는 ‘뉴스공장’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음모론에 기댄 ‘개꿈 공장’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

국정에 넘쳐나는 선동 구호

진씨의 지적대로 해방 이래 좌파들이 애용해온 오랜 영업비밀이 바로 ‘선동’이다. 첫 희생자는 이승만 대통령일 것이다. 책을 써서 일제의 야만을 경고하고, 자주 노선을 고집해 미국에서 암살 위협까지 받은 이 대통령을 친일·친미파로 몰 만큼 집요한 선동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이 일군 ‘한강의 기적’을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공으로 가로챘다는 저급한 비난에서도 선동의 향기가 물씬하다. 북한의 굶주림은 인민들의 나태 때문이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주장을 버젓이 늘어놓는다.

선동의 힘은 민주화 이후 오히려 커졌다. 10여 년 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가 잘 보여준다. ‘불평등 매국 조약’이라는 반미세력의 선동은 거리를 시위대로 넘쳐나게 했다. ‘사법주권을 넘겼다’며 결사반대하는 판사들이 등장했고 “미국의 경제식민지가 돼 맹장수술비가 500만원으로 뛸 것”이라던 의원도 있었다. 광우병 시위 때는 ‘한국인 발병률은 95%’라는 괴담이 나라를 뒤덮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선동이 거리를 넘어 국정 깊숙이 파고드는 듯해 걱정스럽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방사선 직접 노출로 인한 사망자가 없었는데도 정부는 “수천 명이 죽었다”며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징용 판결’ ‘지소미아 파기’ 등 현안마다 “죽창을 들자” “주한미군 철수 불사”라는 구호가 거리가 아닌, 권부에서 먼저 들려왔다. 엄정한 데이터에 기초해야 할 경제 문제에도 선동적이다. 지난해 명목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4위로 추락했건만 ‘30-50클럽’ 중 두 번째라며 선방했다고 호도한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경쟁해야 할 선수를 고령의 챔프들이 출전하는 ‘시니어투어’ 선수와 비교하는 격이다.

‘조국 사태’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좌파 선동의 끝판을 보여주는 듯하다. 청와대는 사실관계 확인도 않고 “검찰이 정치적”이라는 서슬 퍼런 비난만 반복 중이다. 한 지상파 라디오 진행자는 “검찰 공소장은 허위공문서”라는 극언도 쏟아냈다. 백낙청 조정래 등 문단 원로들까지 ‘검찰의 개혁저항이 문제’라며 진실을 등한시하는 모습이다. “선전선동은 진실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히틀러의 말이 연상될 지경이다. 국정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까지 선동의 언어를 구사 중인 게 가장 두렵다. 작년 여름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직후 문 대통령은 “북·미 간 적대관계가 종식됐다”고 단언했지만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인위적 패권교체의 위험성

배경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며칠 전 ‘사회적 패권교체’를 강조했다. 주류 언론·학자·종교지도자들과 재벌을 교체 대상으로 지목했다.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수시 개입과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공수처 설치, 연동형 선거제를 강행한 이유일 것이다. 판사 인사권을 민간에 넘기는 법원조직법 개정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조마조마해진다.

그러나 온갖 선동을 패배시켜온 게 한국 근현대사의 역정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자조했지만 단견이다. 선동의 어두운 그림자는 진실을 존중해온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겨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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