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미동맹은 결딴나지 않을까
한·미동맹의 병세가 위중함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주원인은 문재인 정부의 친북·친중·반일 행보에 미국 국민이 고개를 젓고 있기 때문이지만, 원인은 미국에도 있다. ‘트럼프식 신(新)고립주의’와 ‘돌출 결정’도 만만치 않게 동맹을 흔든다. 한·미동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생각 없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가 될 것인가.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은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시리아 북부에 주둔하던 미군 1000여 명을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이라크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쿠르드족의 독립 추구를 경계해 온 터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표 3일 뒤에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해 수백 명의 쿠르드 민병대원과 민간인을 희생시켰다. 피란민 20여만 명도 발생했다. 22일 터키가 ‘추가 군사작전 불필요’를 선언함에 따라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는 듯했지만, 이미 세 갈래의 큰 후폭풍이 불고 있다.

첫째, 중동의 안보지형이 바뀌고 있다. 미국의 이슬람국가(IS) 소탕전을 돕기 위해 1만 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참전한 쿠르드 민병대와 미국 간 동맹은 와해됐다. 반(反)IS 국제 협력의 붕괴로 IS의 재부상도 점쳐지고 있다. 터키의 일방적 군사행동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결속력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러시아군이 ‘국경지역 경계’ 명분으로 미군의 공백을 메움에 따라 러시아의 입김이 강해질 조짐도 있다.

둘째, 미국 내 정치적 파장도 크다. “동맹군 쿠르드를 배신하고 그들을 위험 속으로 내던지면서 IS가 다시 준동할 길을 열었다”는 비난이 일었다. 지난 16일 미 하원은 미군 철수에 반대하는 초당파적 결의안을 354 대 60이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했다. 공화당 소속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미국이 신뢰할 수 없는 동맹임을 보여준 것이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의 위험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파장이 ‘트럼프 탄핵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셋째, 미국의 동맹국에도 충격을 줬다. 한국, 이스라엘, 대만 등 안보를 동맹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일수록 충격이 컸다. 이들은 “쿠르드와의 동맹은 IS 격퇴에 매우 긴요하다”고 말해온 미국이 하루아침에 헌신짝 버리듯 쿠르드를 버리는 것을 지켜봤다. 쿠르드인들이 철수하는 미군 차량을 향해 썩은 감자를 던지면서 절규하는 장면도 목도했다. 한국에 가해진 충격파도 컸다.

많은 전문가는 다수의 한국민이 70년 전통의 동맹과 주한미군을 여전히 지지한다는 점, 쿠르드족과는 달리 한국은 국가이고 정식 동맹조약을 맺고 있다는 점, 한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유용한 전초기지라는 점 등을 들어 미국이 한국을 함부로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합리적인 예상이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예상만 믿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쁘다. 복잡한 정치 여건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무늬만 비핵화’를 수용해 주한미군 감축, 연합훈련 추가 폐기 등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레이엄 의원의 경고대로 북한이 ‘한·미동맹 무력화를 통한 적화 여건 조성’이라는 대남 전략을 실행에 옮길 기회로 간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답답하다. 동맹을 대신할 안보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안보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열심히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면 강하게 조여오는 좌절감을 떨칠 수 없다. 이들은 북핵을 방관하면서 친북(親北)에 매달리는 정부에 실망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깜짝 놀라고 있다. 그가 한·미 연합훈련을 “완전한 돈 낭비(total waste of money)”라고 했을 때 귀를 의심했고, “한국이 미국을 벗겨 먹고 있다(ripping off)”고 했을 때는 경악했으며, ‘방위비분담금 다섯 배 인상 요구’ 보도가 나오자 쿠르드족을 버렸듯 한국을 버리는 수순에 들어간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국민이 나서서 붙들어 매지 않으면 한·미동맹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결딴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