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의 데스크 시각] 이상한 나라와 야만의 정치
찰스 존스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1998년 <경제성장입문>이란 책을 냈다. 2013년 세 번째 판을 찍으며 책 표지를 바꿨다. 그래프가 아니라 한 장의 사진을 넣었다. 위성에서 찍은 한반도 야경 사진. 반짝이는 남쪽, 어두운 북쪽. 설명은 없었지만 존스 교수는 한국이라는 성장의 아이콘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문명의 충돌>을 쓴 새뮤얼 헌팅턴도 한국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는 책에서 그는 “1960년대 초 가나와 한국의 국민소득은 비슷했다. 지금 가나는 3000달러, 한국은 3만달러가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문화’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찬사였다. 프랑스의 ‘지식 대통령’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도 “제3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 등으로 한국을 평가했다.

헌팅턴, 찰스 존스가 본 한국

그의 말대로 문화 콘텐츠 영역은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팝송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할리우드 영화, 프랑스 샹송, 이탈리아 명품 등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는 그동안 모두 선진국이었다. 이 공식을 한국이 깨버렸다. 싸이와 블랙핑크를 거쳐 방탄소년단까지.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국말을 배우게 한 주역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정작 이 나라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는 점이다. 상당수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곧 나라가 망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정부가 너무 많이 퍼줘서 망할 것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양극화와 역동성 상실로 희망이 없다고 한다. 생각을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인지라 계절을 가리지 않고 거리로 달려 나간다. 광화문에서는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하고, 서초동에서는 ‘검찰 공화국’을 뒤집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구호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본질은 비슷하다. 전복이다.

이상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라와 체제를 뒤집겠다고 매주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광장으로 몰려나간다고 하면 외국인들은 아마 홍콩 같은 사태를 떠올릴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광장의 외침은 계속되지만 불상사는 없었다.

트뤼도의 초대 내각의 메시지

이런 나라지만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때가 온 듯하다. 그 키워드는 품격과 공존이다. 미국이 그런 품격을 보여준 적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최초로 본토(하와이)를 공격당한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퍼부어 전쟁을 끝냈다. 승전이었지만 미국은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승전 방송은 차분하다 못해 침울했다고 한다. 원자폭탄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약간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승자의 품격이었다.

한국은 다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야 한다. 승리 후에는 정적들을 궤멸시켜야 직성이 풀린다. 한국의 정치는 이 수준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동물국회’는 필연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론이 공존이다. 좌도 우도, 젊은 층도 노년층도, 부자도 빈자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길을 내는 것. 정치의 미션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 재선에 성공한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초대 내각 사진을 떠올린다. 트뤼도는 “내각을 작은 캐나다로 만들고 싶다”고 했고, 이를 실행했다. 그 사진에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계층, 다양한 연령층이 모두 등장한다. 한국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공존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