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국책연구기관의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앞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국책연구기관 중 노사합의와 규정 개정을 마친 곳은 세 곳에 불과하다. 노사가 탄력근로제 등에 합의하지 못하면 운영 차질로 ‘정부 싱크탱크’들의 연구역량 저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같은 혼란은 연구직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강제한 데서 비롯됐다. 연구원들은 ‘근무시간’이 아니라 ‘성과’로 평가받는 전문직이다. 야근이나 휴일근무가 잦아 근무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도 어렵다. 주 52시간제 시행 후 민간 기업 연구소와 개발부서는 밤만 되면 ‘불 꺼진 사무실’로 변해버렸다. 이를 똑똑히 경험하고도 보완대책 없이 국책연구기관의 근로시간 단축을 밀어붙이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비롯한 각종 연구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일한 시간에 비례해 성과가 나는 블루칼라(생산직) 근로자에 적합한 제도다. 시간보다 성과 중심인 연구직 등 화이트칼라(사무직) 근로자까지 획일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지난달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입법화 과정에서 벤처기업과 연구개발(R&D) 부문 등의 근무 조건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으로 부작용을 완화하려 하지만 한계가 있다. 미국은 고소득 전문직의 근로시간을 제한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면제(white collar exemption)’ 제도를 두고 있다. 경제계와 학계가 이 제도 도입을 주장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마침 정부 여당에서 내년 50~299인 사업장의 주 52시간제 시행을 유예하는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땜질 처방만 할 게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규제 적용을 제외하는 등 근본 대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