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누가 우리의 적인가?
우리 정부는 지난 22일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파기했다. 사흘 뒤 우리 군은 전격적으로 대규모 독도방어훈련에 들어갔다. 이틀간 시행된 이 훈련에는 해군·해경 함정과 해군·공군 항공기, 육군·해병대 병력 등이 참가했다.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포함한 해군 제7기동전단과 육군 특수전사령부도 참가해 훈련 규모가 예년의 두 배로 커졌다. 직전에 있었던 북한 공격에 대비한 한·미연합훈련은 예년에 비해 대폭 축소됐다. 병력과 장비를 실제로 기동하지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지휘소 연습(CPX) 형태로 이뤄졌다.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일본이 한국의 주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안보에 가하는 위협으로 보면 일본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다. 우리 국방부는 애써 ‘주적’이라는 표현의 사용을 피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심각한 위협은 여전히 북한이다.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은 압박을 통해서든 대화를 통해서든 북한을 비핵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현실성 없는 ‘공허한 희망사항’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한과 대화를 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핵무기를 개발해왔고, 이제 수십 개 핵탄두를 가진 사실상의 ‘핵 국가’가 됐다. 운반체도 개발했다. 탄두의 소형화, 경량화에도 성공했다. 게다가 이제 요격이 쉽지 않은 이스칸데르급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이에 맞먹는 대형 장사포까지 개발에 성공했다.

이런 핵 능력을 갖춘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까? 그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두 가지 예만 들겠다. 북한은 지난해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직후 펴낸 김정은 찬양 도서에서 “영구적인 핵 보유와 이를 토대로 한 경제성장이 ‘(핵·경제) 병진 노선’의 궁극적 목표”라고 주장했다. 또 김정은은 지난 5월 4일 신형 미사일 발사를 ‘지도’하는 자리에서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고 담보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핵 보유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가 ‘북한 핵 위협의 경시’다. 그 근거는 설마 동족에게 핵무기를 사용하겠느냐는 종족주의적 믿음이다. 그래서 비핵화의 구체적 증거나 진전이 없어도 북한이 내뱉는 ‘평화’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순진함의 극치를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6·25 남침을 상기하면, 그리고 이에 대해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안이한 태도이자 거짓 믿음인지 알 수 있다.

사실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한국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 우리 같은 개방경제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할 때 따라올 국제 제재를 견딜 재간이 없다. 그래서 독일처럼 유사시에 일시적으로 NPT에서 탈퇴해 미국의 핵을 빌려 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를 하는 게 하나의 대책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은 지난 7월 25일 내놓은 ‘21세기 핵 억지력: 2018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 작전 운용화’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일 양국과 핵 공유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일본과의 핵 공유 협정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억제하고 북한 도발을 사전에 억제하도록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파국으로 치닫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로 볼 때 한·미·일 핵 공유가 쉽지는 않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임적인 언동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미 동맹의 이완이 우려되는 것은 핵 공유 대안 등 선택지를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북한이 대놓고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핵무기는 원래 협박용이다. 위협을 통해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도구다. 무력시위를 하고, 그걸 바탕으로 각종 양보를 끌어내는 데 유효하다. 적당히 국지적 갈등을 일으킨 뒤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면 핵무기가 없는 쪽은 그 요구에 불응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거부의 대가는 파멸이기 때문이다. 비대칭 전력에서 열세인 한국은 북한의 부당한 요구에조차 끌려다니게 될 것이다. 북한의 이른바 ‘핵 노예’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