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당이 올해보다 9%나 인상된 규모(513조원)로 내년 예산을 확대·편성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올해도 9.5% 증가해 2년 연속 팽창 재정이다. 고용 창출, 중소기업·자영업 위기 극복,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 강화, 포용경제 등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년에도 경제엔 적신호다. 세수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세수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채를 찍을 수밖에 없다. 이달 초 이미 3조원가량의 적자 국채 발행을 결정했다. 여권은 이 카드를 또다시 활용할 모양새다.

반대급부도 없이 강제 징수하는 조세와 달리, 국채에서는 투자자가 자발적으로 이자를 받고 돈을 국가에 빌려준다. 적절한 수익의 안정적 획득을 보장하는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국채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다. 국채 수요가 활기찬 건 그래서다. 조세 증대와 달리 국채의 증가로 당장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없다. 정부가 국채를 찍어서 쉽게 시민들의 돈에 접근하는 건 그런 연유다.

부채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재정 건전성을 해치고 정부 지출이 낭비를 초래한다거나 오늘의 빚은 후세대의 부담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우려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건 국채는 ‘부도덕한 금융상품’이라는 점이다. 이는 경제윤리에서도 간과한 새로운 문제다. 경제윤리는 도박, 포르노, 대량살상무기 등에 연루된 기업의 주식을 매입해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그런 상품 생산에 협력하는 것의 비윤리성을 다뤄왔다.

원래 도덕적 행위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타인에게 시키지 말라’는 공자와 독일 철학자 칸트의 도덕률에 따르는 행위다. 이 도덕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이다. 그건 ‘누구나 자신의 행동으로 타인의 재산과 자유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경이롭게도 그 도덕률은 시장경제의 윤리적 기초다. 그런 행동규범 내에서 누구나 자발성에 기초해 타인들과 거래·협력할 자유가 있다.

그 행동규범에 비춰 보면 투자자들의 국채 매입은 부도덕의 극치다. 우선 국가가 부채에 대한 이자를 어떻게 지급하고 원금을 어떻게 상환하는지를 보자. 국가는 새로 빚을 내 만기가 된 빚을 갚고, 그 빚이 만기가 되면 또 새롭게 빚을 얻는 게 일상이다. 이는 ‘폰지 게임’과 다름없다. 폰지 게임은 빌린 돈의 투자 수익으로 대출을 상환하지 않고, 신규 대출을 다시 받아 상환하는 ‘돌려막기’ 형태의 금융 사기다. 부도덕하게도 국가의 폰지 게임을 재정적으로 후원해 이득을 챙기는 게 국채 투자다. 그러나 빌린 돈을 투자해 번 이득으로 빚을 갚는 회사채에 투자하는 것은 ‘윈윈 게임’이다.

국채 발행을 통한 정부 지출이 고용, 성장, 생산성을 제고한다면 사기 행각이라는 불안한 의구심은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지출과 부채가 적을수록 고용이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게 건전한 경제학의 상식이다. 고용, 성장, 복지 등 갖가지 명목으로 정부 지출을 늘렸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낸 예는 찾기 어렵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희소한 자원을 정치 권력과 연계해 끼리끼리 나눠 먹는, 그래서 양극화의 주범인 정실주의가 재정지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 재정지출을 지원하는 국채 발행과 투자가 어찌 부도덕의 극치가 아니란 말인가!

재정지출 확대를 위한 오늘의 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할 외상거래다. 다시 말하면 오늘의 국가 부채는 내일의 납세자에 가하는 억압적 조세 부담이다. 언젠가는 약탈적인 세금으로 갚게 될 국채에 투자하는 건 비윤리적인 국가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행위이자 약탈적 일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이자를 받아먹는 파렴치한 행동이다. 국채는 이런 점에서 타인의 자유와 소유를 희생시켜 투자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그래서 양극화를 부추기는 금융상품이다.

이쯤에서만 보더라도 국채는 은밀히 침투해 타인의 자유와 소유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부도덕한 금융상품이다. 적자 국채 발행에 대해 엄격한 제동이 필요한 이유다. 그 방법은 적자 예산을 막으면서 동시에 지출을 억제하는 균형예산제다. 공공지출은 오직 조세 수입에 의해서만 조달돼야 한다는 게 자유사회의 재정헌법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