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일하는 국회법' 시행됐지만 일 안하는 국회
여야 5당 대표와 원내대표들이 17일 오전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제헌절 71주년 경축식을 계기로 국회의장실에 마련된 환담 자리였다. 여야가 의사 일정을 두고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합의를 이끌 묘수가 나올지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조차 여야는 기싸움만 반복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바라보며 “저희 모두 이 원내대표님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요구하고 있는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 표결을 민주당이 받아들여야 본회의 일정에 합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원내대표는 “그 얘기를 하니까 (환담에 참석한) 모든 분이 쳐다보신다”고 맞받았다.

유성엽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달라고 했더니 (한국당이) 안 준다”며 “한국당에서 뭘 줘야 우리도 준다”고 압박했다. 이에 한국당 소속 이주영 국회 부의장은 “줄 만한 거리는 여권에서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받아쳤다.

본회의 개최 일정을 두고 여야가 또 입씨름을 벌인 이날은 ‘일하는 국회법’이 처음 시행된 날이다. 매월 2회 이상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법안의 핵심이다. 여야 대치 속 국회의 법안 심사 속도가 더뎌지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내놓은 고육지책이 일하는 국회법이다.

법안소위는 국회에서 가장 면밀하게 법안 내용을 들여다보는 핵심 단계다. 하지만 그동안 여야 갈등으로 국회가 멈추면 법안소위도 멈추기 일쑤였다.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총 1만4783건. 이 중 70.6%인 1만432건은 한 차례의 법안소위 심사조차 거치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20대 국회 들어 법안소위를 11번밖에 열지 않았다. 여성가족위원회는 12건, 운영위원회는 15건에 그쳤다.

어렵게 열린 6월 임시국회는 19일 회기가 끝난다. 여야 지도부가 추가경정예산안과 핵심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최 일정을 협의하고 있지만 전망은 부정적이다. 정 장관 해임안 표결을 두고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서다. 이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의사 일정이 합의될 때까지 전체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법사위까지 파행됐다. 국회 한 관계자는 “6월 임시국회는 물 건너갔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라며 “본회의와 법사위가 파행인데 상임위를 열어 무엇 하느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국회는 4월 5일 본회의를 마지막으로 100일 넘게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대 국회가 이미 ‘파장’ 분위기에 들어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실적 없이 정쟁만 이어가는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