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국민연금 가불시대
“젊어서 월급 가불할 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었죠. 환갑 넘어서 국민연금까지 가불하게 되니 참 씁쓸합니다.” 10년 전 중소기업에서 퇴직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던 65세 김씨는 최근 수술비 500만원을 구하지 못해 국민연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원금과 이자는 매월 받는 연금에서 떼기로 했다.

김씨처럼 급전을 빌리는 ‘국민연금 실버론’ 이용자가 올 들어 5월까지 50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 이상이다. 대출한도(1000만원)까지 빌린 사람이 70%나 된다. 이와 별도로 연금 수령액 감소를 무릅쓰고 조기 수령을 택한 사람이 지난해 4만 명을 넘었다. 노후자금을 헐어 써야 할 만큼 노년 빈곤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지난해 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다.

이들이 직장에서 밀려난 시기는 대부분 50~55세 때다. 다른 일자리를 구했어도 소득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자녀들의 교육비와 결혼비용, 부모의 요양·의료비 지출은 늘었다. 이러다 1990년대 후반 일본처럼 ‘하류노인’들만 늘어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일본은 고령사회로 들어선 지 20년 만에 ‘노후 파산’으로 사회 전체가 휘청거렸다.

해결책은 노인들이 지금보다 일을 더 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년 65세 연장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고용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임금 수준을 낮추고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등의 보완책도 추진 중이다.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면 국민연금 수급연령 공백을 줄일 수 있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65세 정년 연장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6.4%로 ‘반대한다’는 응답 27.5%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청년층이 미래에 감당해야 할 노인부양 비율이 높아진다.

우리나라의 노인 일자리 충족률은 43% 수준이다. 지난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노인은 119만5000명이었지만 준비된 일자리는 51만 개에 불과했다. 이들의 재취업 지원은 청년 일자리 대책만큼이나 절실하다. 근로소득이 줄면 생계 유지가 어려워지고 소비 활동이 위축되면 국가 전체로도 큰 손실이다. 고용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늘리는 일본을 참고할 만하다. 예부터 “노년빈곤은 소년등과와 중년사별보다 더 불행한 일”이라고 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