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부
3년차인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건 사실 왜곡과 거친 권력 행사 방식이다. 정책 성과를 다수 국민의 체감과 다르게 자화자찬한다든지, 기업인 등 민간 부문에까지 검찰권을 과잉 발동해 단죄하는 듯한 장면의 반복은 역대 정부에서 좀처럼 없던 일이다.

논리의 전도, 사고의 단순함, 권력 행사의 타당성을 묻고 따지는 일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주 취임 2주년 기념 KBS 대담은 적지 않은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거시(경제)에서 크게 성공했다”며 “OECD 회원국 가운데 고(高)성장국”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생산 수출이 동반 추락해 1분기 마이너스 성장하고, 원화 가치가 급락 중인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다. 성장률도 OECD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중위권으로 밀려난 게 ‘팩트’다. 혈세로 노인 단기 일자리만 잔뜩 늘린 사실상 분식통계 지적을 받는 터에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있다”고 한 것도 동의하기 힘들다. 30·40대 가장과 청년이 주축인 120만 실업자들의 속은 탔을 것이다.

여권 전반의 위험한 '팩트 뒤집기'

이번 대담뿐만 아니다. 대통령 발언이 있은 다음날 ‘팩트 체크’ 기사가 나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한국이 세계 최고 불평등국’이라며 역대 정부의 잘못을 따져물었다. 한국의 평등도가 인구 5000만 명 이상 나라 중 독일 다음으로 좋은 축에 든다는 통계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상감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런 인식과 발언의 배경은 뭘까. 참모들이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탓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많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청와대가 구중궁궐이 아닐진대 언론의 무수한 지적을 모를 리 없다. 직언하는 원로 전문가 기업인들과의 만남이 꾸준했던 점도 참모나 성향 문제로 돌릴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의도적인 선전전으로 의심해 볼 만하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여당 대표는 양극화 책임을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의 잘못된 정책 탓”으로 전가했다. 당·청은 자신들이 밀어붙인 주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버스파업 사태도 ‘일 안 하는 관료 탓’이라며 혀를 찼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 포퓰리즘의 상용 수법이란 점에서 걱정스럽다. 남미나 남유럽에서 보듯 포퓰리즘은 진보정치가 빠지기 쉬운 덫이다. 기득권과 대중 간 갈등을 조장하는 태도는 진보가 아니라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우리가 정의'라는 독선은 필패

‘우리가 정의이고, 우리만이 국민을 대표한다’는 게 포퓰리즘의 핵심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반대파에 유난히 엄격해 보이는 공권력은 우려스럽다.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은 전례 없는 대통령 공개 질타에 이은 무차별 수사로 온갖 모욕을 당하고 옷까지 벗었다. 해당 혐의에 대법원 무죄판결이 났지만 그뿐이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다’는 지식인들의 침묵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줄곧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역설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모습에 궁금증이 커지는 가운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부’가 먼저 성큼 다가왔다. 야당은 이 낯선 정부를 ‘좌파 독재’로 규정한다. ‘촛불 정부를 색깔론으로 모느냐’며 대통령은 발끈했지만, 왜 그런 비판이 나오는지 돌아봐야 한다. 사회주의 혁명가인 레닌은 “거짓말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기만해도 좋다. 우리 목표 자체가 더 높은 진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독한 정의의 독점이다. 그러나 사실을 뒤로하고는 정부가 소망하는 ‘평범함의 위대함’은 달성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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