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19)] 입헌군주제의 미래
군주제가 화제다. 2013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의 평화적 왕위 계승, 2014년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의 펠리페 6세에 대한 양위에 이어 지난 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와 4일 와치랄롱꼰(라마 10세) 태국 국왕의 대관식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렸다.

군주제는 시대착오적 유산으로 결국 공화정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집트의 마지막 국왕 파루크 1세는 1952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퇴위한 뒤 말했다. “언젠가 세상에는 오직 다섯 명의 왕만이 남게 될 것이다. (트럼프 카드상의) 하트, 스페이드, 다이아몬드, 클로버와 영국 왕이다.” 하지만 현재 20여 개 나라와 영 연방국가들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입헌군주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입헌군주국이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전문가도 있다. 왜일까?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19)] 입헌군주제의 미래
정치를 초월하는 입헌군주

입헌군주제의 장점을 먼저 살펴보자. 첫째, 입헌군주는 정치를 초월해 존재한다. 군주는 특정 정당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둘째, 국왕은 인종, 종교 등을 초월해 국민을 단합시킨다. 벨기에, 스페인, 영국, 태국 등 많은 나라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심지어는 내전도 방지한다.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하자 10여 개 나라로 분열된 것이 그 예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이 무너졌을 때 아프가니스탄에 국왕이 복귀했더라면 군벌 간 경쟁과 분열을 원만하게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셋째, 군주제는 극단적 형태의 정부가 출현하는 것을 예방한다. 군주는 명목상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특정 정치세력이 한 나라의 정체(政體)를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다. 아랍 국가에선 군주제 국가가 보다 안정적인 정치·사회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50년간 영국에서 암살당한 군주는 없었지만 미국에선 네 명이나 되는 대통령이 암살당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넷째, 군주는 유사시 나라의 명운을 좌우하는 결정을 할 의무와 특권이 있다. 1981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힘으로써 쿠데타를 막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일왕 히로히토는 계속 싸우겠다는 군부의 의지를 꺾고 무조건 항복을 발표해 많은 인명을 구했다. 마지막으로, 변화의 시대에 군주제는 전통과 연속성을 상징한다.

과거 군주제를 비판하던 논리는 오늘날 거의 사라졌다. 비판의 근거는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군주는 절대권력을 휘둘러 폭군이 되기 쉽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오늘날 군주는 통치자의 권력을 견제하고 제도화한 헌법과 전통의 틀 내에 존재한다.

둘째, 출생에 의한 세습 때문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군주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후계자들은 출생 직후부터 철저한 교육을 받는다. 언론 및 국민과의 소통에 대해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 국왕이 각료들과 회의를 하던 중 서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조카이자 후계자인 앨버트 공에게 서류를 주우라고 말했다. 미래의 국왕이 바닥에 엎드리는 모습에 당황해하는 각료들에게 국왕은 말했다. “군주는 국민 앞에 엎드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아들인 조지 6세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영국의 메리 왕비가 보인 반응은 나지막한 소리로 “오~”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공주가 슬픔에 잠긴 왕비를 위로하기 위해 달려왔을 때 왕비는 말했다. “왕비 앞에 올 때는 반드시 머리 손질을 하려무나.” 극한상황에서도 감정을 절제하고 예법에 따라 행동하는 왕비의 품위가 느껴진다.

결함 있지만 유용한 정치제도

셋째, 왕실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많은 세금이 든다는 주장이다. 영국 왕실 유지에 큰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여왕은 보수를 받지 않는다) 왕실은 관광, 패션산업 등에서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신혼 시절, 부군 앨버트 공이 여왕과 부부싸움을 한 뒤 화가 나서 자신의 방문을 잠갔다. 여왕이 문을 세게 두드리자 앨버트 공이 물었다. “거기 누구요?”

“나는 영국 여왕이고 문을 열 것을 요구하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번에는 여왕이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당신 아내요, 앨버트.” 그제야 문이 열렸다. 화려한 생활의 이면에 여왕 남편으로서의 고충을 느끼게 한다.

넷째, 부정부패나 권한남용 등의 불법행위가 만연하기 쉽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치가 확립된 오늘날 국왕을 비롯한 왕실가족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오늘날 상당수 나라에서 군주는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에서는 국민의 70% 이상이 군주제를 지지한다. 일부 결함에도 불구하고 유용한 정치 제도로 군주제가 계속 존속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