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칠칠한 사람, 서슴는 사람
조선시대 궁중의 말과 마굿간을 관리하던 관청이 있었다. 그곳 하인들은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길을 비키라고 소리치며 건달처럼 거드름을 피웠다. 거기에서 ‘거들거리다’라는 말이 나왔고 ‘거덜 나다(살림이나 무슨 일이 흔들려 결딴이 나다)’라는 표현이 정착됐다. 우리말에는 이 같은 생활 속의 용례가 풍부하게 반영돼 있다.

‘시치미를 떼다(알고도 짐짓 모르는 체하다)’는 매사냥에서 유래한 말이다. 시치미는 매의 꼬리털 속에 얇게 매단 명패다. 이것을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쓸데없고 공연한 행동을 가리키는 ‘부질없다’는 강하고 단단한 쇠를 얻기 위해서 쇠를 불에 달구는 ‘불질’에서 나온 말이다. 불질을 하지 않은 쇠는 금세 휘어지기에 쓸모가 없다.

무심코 쓰면서 뜻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제 삼성그룹의 대졸 신입사원 공채 시험에 ‘겸양(謙讓)하다’의 반의어를 묻는 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잘난 체하다’의 의미를 지닌 ‘젠체하다’였다. 수험생들은 “난생처음 보는 단어”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칠칠하다(일을 깔끔하고 민첩하게 처리하다)’와 ‘서슴다(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도 까다로운 문제로 거론됐다. 평소 ‘칠칠맞다’ 등을 부정어법으로 쓰다보니 더 헷갈렸다는 수험생이 많다.

일상 생활에서 중복된 표현을 잘못 쓰는 사례도 많다. ‘앙금’은 녹말 등의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을 일컫는데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로 쓰는 건 중복이다. 이미 다 가라앉아 생긴 것이 ‘앙금’이므로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해야 한다. ‘하락세로 치닫고 있다’도 ‘치닫다’가 위쪽으로 달려 올라가는 의미니까 ‘하락세로 내닫고 있다’고 하는 게 옳다.

일본말처럼 들리는 우리말도 있다. ‘에누리’는 ‘잘라내다’라는 뜻을 가진 ‘에다’의 어간에 접미사 ‘누리’가 붙어서 이뤄진 말이다. ‘물건 값을 깎는 일’ 또는 ‘어떤 말을 더 보태거나 축소해 얘기하는 것’을 뜻한다. ‘야코가 죽다’의 야코는 ‘양코’가 줄어서 된 말로 서양인의 높은 코가 낮아졌다는 말이다.

TV 자막에 잘못된 우리말이 많이 등장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상파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막이 편당 1400개를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는 터무니없이 왜곡된 표현이 많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말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다. 우리말 속담에 ‘같은 말도 툭 해서 다르고 탁 해서 다르다’고 했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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