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혁신금융 선포식을 열고 ‘혁신금융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금융 패러다임을 가계금융·부동산 담보 중심에서 미래 성장성·자본시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게 골자다. 정부가 설정한 방향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금융도 금융 패러다임 전환도 정부가 주도하는 식으로 가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경험이다.

정부가 금융회사들을 통해 혁신 중소·중견기업에 향후 3년간 대출 100조원을 공급하겠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기술금융으로 90조원, 특허권과 다른 자산을 포괄해 한번에 평가·취득·처분하는 일괄담보대출로 6조원, 미래 성장성 대출로 4조원을 공급할 방침이지만, 중요한 것은 목표 수치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기술금융은 앞 정부에서 대통령이 나서 독려하고 공공기관들이 지원 대상기업 발굴에 나섰지만, 그때만 반짝했을 뿐 근본적인 금융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또 동산·지식재산권 등에 대한 거래를 지원하고 기술평가와 신용평가를 일원화하는 등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하지만, 이 역시 매번 나오던 단골 메뉴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민간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혁신 중소·중견기업을 획기적으로 지원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혁신금융은 이렇게 해서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혁신금융이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미국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말하는 바이오와 4차 산업혁명 분야 기업의 코스닥 상장 가속화도 필요하겠지만 미국에서는 상장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인수합병(M&A) 시장이다. M&A가 활성화되면서 기업 평가, 기술 평가 등 심사 경쟁력이 생기고, 이는 자연스럽게 지식재산권 등의 거래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기업 규제 등 M&A를 막는 걸림돌이 많아 혁신금융 출구가 협소하고, 이는 모험자본·엔젤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혁신금융도 지원기업 발굴도 정부가 아니라 시장에 맡기는 쪽으로 방향을 확 틀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