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금융당국의 이중잣대
홍콩 금융시장 감독당국이 글로벌 투자은행 4곳이 고객 기업의 주식공개(IPO) 과정에서 주관사로 일할 때 절차를 무시하고 임의로 일을 처리했다며 강한 채찍을 꺼내들었다. 당국이 투자은행들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 것은 좋은 시작이다. 하지만 아시아를 주도하는 금융 중심지로 홍콩 시장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당국이 신경 써야 할 사항은 그것만이 아니다.

지난 14일 홍콩의 증권선물위원회(SFC)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 스탠다드차타드, UBS 4개 은행에 도합 1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중국 본토 기업들이 홍콩 증시에 상장할 때 IPO 주관사로서 해당 기업에 대한 실사를 제대로 해야 할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중 UBS은행의 관계회사인 UBS AG와 UBS증권(홍콩)은 가장 많은 벌금인 3억7500만홍콩달러(약 543억원)를 부과받았다. 또 UBS는 1년간 주관사 역할을 금지당했다.

IPO 주관사 잘못에 채찍은 옳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UBS와 스탠다드차타드가 IPO에 관여했던 중국 목재회사 차이나포리스트리는 2009년 상장됐지만 불과 6년 뒤인 2015년에 회사가 해체됐다(2017년 2월 24일 상장도 폐지됐다). 티엔허화학은 2014년 공개됐지만 2015년 거래가 정지됐다. 은행들은 초보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스탠다드차타드와 UBS는 차이나포리스트리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산림을 진짜로 소유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조차 빠뜨렸다.

4개 은행의 연간 수익에 비교해 본다면 1억달러 규모 벌금도 결코 많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이 명성에 타격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벌금은 모든 은행이 좀 더 일을 잘해야 한다는 유인을 제공할 것이다.

홍콩 당국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싶다면 그들이 더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 홍콩은 최근 수년 동안 하너지신필름(중국 최대의 태양광 패널기업)과 같은 거품이 낀 기업의 주식 급등락에서부터 수상한 순환출자로 연결된 스몰캡(소형주)의 주가 폭락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스캔들에 노출되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비판적인 보고서들은 종종 사기를 비롯해 시장의 불규칙성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티엔허화학의 문제점을 발견한 것은 공매도 투자자들이었다. 그러나 홍콩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수년 동안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지 못하도록 최대한 억누르느라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기업 비판 의견에 관용 보여야

시장조사업체이자 유명 공매도 투자회사인 시트론 리서치의 앤드루 레프트 대표가 2012년 부동산 개발사 차이나에버그랜드에 관한 비판적인 보고서를 냈다는 이유로 5년간 주식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막은 게 한 예다. 당국은 또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중국 기업 6곳에 ‘적신호’를 보낸 2011년 보고서에서 잘못된 숫자를 입력하거나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고 2014년 지적했다. 하지만 해당 기업 중 절반은 실제로 부도가 났다.

규제당국이 IPO 주관사들에 해당 회사가 상장될 만한 상태인지 잘 판별하는 ‘문지기’ 노릇을 똑바로 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다면 이미 상장된 기업들이 다시 슬쩍 ‘문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는지 지켜보는 이들(비판적인 보고서 작성자들)에게도 좀 더 관용적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정리=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

이 글은 재키 웡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가 기고한 칼럼 ‘Hong Kong Must Give Critical Voices Freer Rein’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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