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이 공직자들이 감사로 인해 일하기를 주저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컨설팅 제도’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는 내용의 올해 감사운영 방향을 제시했다. 사전컨설팅은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불분명한 규정 등으로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감사원에 컨설팅 신청을 하고, 이를 토대로 업무를 처리하면 책임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 행정을 장려하고 소극 행정이나 부작위 행정을 문책할 것을 주문한 데 따른 조치로 보인다.

감사원은 지난해 공익을 위해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한 공직자에 대해서는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없는 한’ 책임을 묻지 않는 적극 행정 면책제도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기대했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사전컨설팅까지 추가했지만, 지금처럼 정책 판단의 잘잘못을 따지는 ‘정책감사’가 그대로 있는 한 공무원들이 얼마나 사전컨설팅을 신청하려 들지 의문이다. 감사원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정책 판단에 대해 ‘사후 평가 잣대’를 남발해 온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금융감독원 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감사원의 예측 불가능한 무소불위 정책감사가 횡행하는 한, 대통령이 문책하라는 소극 행정이나 부작위 행정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이대로는 “어떤 행정이건 감사에 대비한 논리부터 미리 챙겨야 한다”는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보신주의’가 깨지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처럼 감사원 감사를 회계감사로 국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적극 행정도 무조건 바람직한 게 아니다. 자칫 ‘과잉 행정’으로 이어지면 공무원을 대면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기업이나 국민에게는 그 또한 불편이요, 규제가 된다. 적극 행정이 요구될 정도로 해석이 엇갈리는 규제가 있다면 해당 법령을 고쳐 불확실성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게 정도일 것이다. 소극 행정, 부작위 행정만이라도 제대로 막으려면 처벌 위주의 후진적인 감사원 정책감사를 폐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