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학 기부 활성화 여건부터 다져야
철강업의 황제 앤드루 카네기, 은행업의 대부 J P 모간, 석유산업의 대명사 존 록펠러, 철도 재벌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는 공통점이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산업자본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당시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 자리에 올랐고, 정치와 경제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오늘의 미국을 만들어 낸 설계자였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 모두 거액을 대학에 기부하거나 직접 대학을 설립했다는 점이다. 카네기는 카네기멜론대학의 전신인 카네기기술학교의 설립자이며, 카네기교육재단을 설립해서 현재까지 대학 교육과 평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밴더빌트는 남부의 하버드대학이라고 불리는 밴더빌트대학을 설립했고, J P 모간은 컬럼비아대학에 지속적으로 기부했으며, 록펠러는 시카고대학을 재설립하는 재원을 기부했고, 록펠러대학을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전신회사를 소유했던 이즈라 코넬은 코넬대학을, 캘리포니아 철도 재벌이었던 릴랜드 스탠퍼드는 스탠퍼드대학을, 철도회사를 소유하고 있던 존스 홉킨스는 존스홉킨스대학을 설립했다.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매사추세츠공대(MIT)에 10여 년간 재정지원을 한 익명의 기부자는 코닥의 설립자 조지 이스트먼이었다.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대학은 14개 대학의 학위만이 유럽에서 인정받았을 뿐이었다. 그랬던 미국 대학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고등교육기관으로 자리잡게 된 가장 큰 동력은 대공황 이전까지 확보한 약 5000억달러의 기부금이었다. 유럽 대학 몰락의 이유를 진단한 네덜란드 교육부 장관 요 리츤의 설명이다. 2018년 기준, 하버드대 392억달러, 텍사스오스틴대 310억달러, 프린스턴대 258억달러, 예일대 294억달러, 스탠퍼드대 248억달러, MIT 164억달러, 미시간대 119억달러, 컬럼비아대 109억달러, 펜실베이니아대 102억달러, 시카고대 82억달러, 코넬대 72억달러의 기부금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지속적인 모금 활동과 적극적인 투자로 기부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매년 일부 금액을 학교 운영에 사용하고 있다. 하버드대는 2018년 18억달러를 학교 운영에 사용했다. 이런 기부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 150여 개 사립대학의 기부금은 2003년 1조1945억원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2014년 대학기부금이 소득공제 항목에서 세액공제 항목으로 바뀌면서 개선 가능성이 사라졌다. 2016년 기부금은 4233억원으로, 블룸버그 개인 기부금의 5분의 1 수준이며, USC 1년 기부금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런데 대학 등록금은 2009년부터 10년간 동결돼 있다.

지난달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강사법 시행으로 시간강사의 대량 해고가 벌어지는 상황에 우려를 밝히며 대학총장들에게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요청했다. 대학도 젊고 유능한 시간강사를 해고하는 사태를 원하지 않는다. 재정적으로 버틸 방법이 없어 시간강사 수를 줄이는 것일 뿐이다. 교육부가 대학에 추가 예산 지원을 할 형편이 아니라면 교육기관에 대한 기부금이 세액공제가 아니라 소득공제가 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학이 기부할 만한 곳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라면, 이를 돕는 건 교육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