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본의 '직설 화법'을 보며
일본인들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말끝을 흐리거나 빙빙 돌려 얘기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외국인이 이런 일본인 특유의 ‘간접화법’을 이해하는 일은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일본인 특유의 모호한 대화법을 오해해 곤란을 겪은 적도 많았다. 지난해 4월 일본의 한 유명 기업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며칠 뒤 홍보실을 통해 연락이 왔다. ‘7월까지는 일정이 빡빡해 인터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힌 줄도 모르고 “8월 중 날을 잡아 달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 일본인 직원의 당황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거칠어진 일본의 '입'

그런데 요즘 일본인답지 않은 직설적 의사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한·일 관계에서다. 지난 2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52분간 진행한 1만2800자 분량의 의회 시정연설에서 단 한 번, 그것도 부수적으로 한국을 슬쩍 언급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무시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는 2017년까지는 매년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표현해 왔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 문제로 한·일 간 이견이 불거진 지난해 관례적으로 사용하던 ‘우호적’이라는 수식어구가 삭제됐고, 올해는 한국에 대한 언급이 통째로 빠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비공식적 발언은 적정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말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피해자 판결에 대해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는 외교적 결례가 될 법한 표현을 내뱉었다. 일본 초계기의 저공 위협 비행 및 레이더 조사(照射) 여부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도 동영상 공개를 밀어붙였다. 한국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아베 총리는 양반이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의회 외교부문 연설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 위안부 합의 등 국제적 약속을 제대로 지킬 것을 ‘강력히’ 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관이 한 발언이라고 믿기 힘든 수위다.

기로에 선 對日 외교

일본 사람들이 이처럼 분명한 직설화법을 사용할 때는 이미 상대방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말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도쿄지검에 체포된 직후 닛산 측이 “내부 고발에 따른 조사 결과 곤 회장의 부정행위가 드러났다”고 간명하게 공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이 한국에 거친 말을 쏟아내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일본의 한인 사회에선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일본 세무당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등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으로선 일본 정치권이 정략적 판단에 따라 내놓는 직설적인 화법에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며 반박할 법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대치 일변도로 치닫는 것은 양국 모두에 이롭지 않다. 미·중 무역 분쟁에 대응하고,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원활하게 풀어나가기 위해선 상호 협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배수진을 친 것과 같은 거친 표현을 앞세우며 강경 자세로 나오고 있지만, 이런 때일수록 냉정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론 엄정하게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일본과 물밑 대화를 이어가는 강온 양면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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