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새해의 평화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대화가 조금씩 진전되는 모양이다. 지난해 초 양쪽 통치자가 ‘폭탄’ 언사를 교환하던 때가 생각난다. 일상이 바빠 큰 실감 없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가 올 가능성도 있었다. 근대 들어 한반도에서의 삶이 평탄했던 시기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전쟁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는 피카소 그림에서 게르니카의 폭격 장면을 본다. 1937년 스페인내전에서 프랑코 반군을 돕던 독일 폭격기들은 소도시 게르니카에 2시간 반 동안 폭격을 가해 주민의 3분의 1을 사상시켰다. 놀랍게도 이 공습의 부수적 목적은 항공기 폭격의 효과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내전 중 프랑코 반군은 공화주의자 5만 명을 공식 처형했다. 무작위 살해와 자살, 아사, 감옥에서 병사한 사람을 다 합하면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과달키비르강은 흐르네’ 시구로 유명한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도 내전 중 파시스트에게 희생된 인물 중 한 명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처참한 전투는 1942년 스탈린그라드(현 볼고그라드)에서 있었다. 도시 이름의 상징성에 집착한 독일 제6군이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려 맹공을 퍼붓다가 대규모 소련군의 거대한 포위망에 갇혔다. 6군의 파울루스는 히틀러의 기대를 저버리고 항복했다. 독일군 22만 명이 굶고 얼고 다쳐서 죽고, 9만 명이 포로가 됐다. 소련군도 48만 명이 죽고, 65만 명이 다쳤다. 전체 사상자가 200만여 명에 달한 최악의 군사충돌이었다.

우리 가족 중에도 6·25 전쟁 때 희생된 분이 많다. 전쟁의 참상은 한반도에서 절대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행복을 치명적으로 해치는 인간의 행위가 전쟁 아닌가.

국제법 측면에서 국제 사회는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전쟁을 막으려 한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대량 학살을 저지른 주모자를 법리로 처벌해야 전쟁범죄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대의로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됐다. 우리나라를 포함, 123개국이 회원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아직 가입하지 않았다. ‘법리’만으로 전쟁을 막기는 쉽지 않다.

90세가 된 어머니는 어릴 적 아들들을 앉혀놓고 “너희들 시대엔 제발 전쟁이 없어야 할 텐데…”라고 말씀하곤 했다. 1953년 정전 이후 몇 번의 일촉즉발 대치가 있었지만 그래도 한반도엔 전쟁이 없었다. 새해에는 슬기로운 한민족이 민족의 미래를 잘 가늠하고 현실을 다듬어서 민족 번영의 긴 시대를 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든 전쟁보다는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