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영업역량은 기업성장의 근간
우연한 기회에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섭외 시작부터 녹화가 끝날 때까지 필자는 주로 작가와 소통을 했다. 작가는 원고만 쓰는 줄 알았는데 섭외와 원고 작업은 기본이었다. 녹화와 관련한 일들을 조율하고 무엇보다 카메라가 돌기까지 부드러운 소통을 통해 긴장한 출연자의 안정(?)까지 돌보는 듯했다. 녹화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무사히 잘 끝났음에 안도하며 감사 인사를 전하니 담당 프로듀서는 “작가님의 노련한 영업력 덕”이라고 했다. 작가의 영업력이 현장의 적잖은 분위기를 좌우할 뿐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느껴졌다. 영업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필자는 이동통신사업을 하기 위해 미국 AT&T 벨연구소에서 쌍용그룹으로 1992년 초 옮겼다. 쌍용그룹의 이동통신 사업은 가칭 미래이동통신이 추진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 많은 요소들이 사업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우리는 이동통신 사업권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그룹 내 정보통신 사업을 하는 쌍용컴퓨터(현 쌍용정보통신)로 전직했다. 나는 영업을 하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업을 맡겠다고 하니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 내가 귀국을 결심한 것은 궁극적으로 능력 있는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싶어서였다. CEO 덕목 중 하나가 탁월한 영업력을 갖추고 회사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제록스코리아에 ‘경쟁력 있는 영업’이라는 제목의 교육프로그램이 있었다. ‘고객에게 어떻게 접근하고 설득하는가’ 등 영업의 ABC라고 할 수 있는 방법과 과정을 분임 토의하고 파트너와 역할을 분담하며 익히는 수업이었다. 영업을 이해하고 체질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통신사업본부 영업과 함께 시스템연구소도 맡아 ‘로우 모델’ 라우터와 허브를 개발해 통신 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KT 등 기간통신 사업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영업에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사태로 쌍용그룹은 서서히 해체되는 운명을 맞게 됐다. 필자는 영업에 강점이 있어 정보기술(IT) 대기업 CEO로 영입돼 그 회사를 상장시키고 순익 구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필자는 선후배 동료들에게 직접 영업부서에 있지 않더라도 항상 영업력으로 자신을 무장하라고 한다. 영업 역량은 영업 부서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CEO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영업 역량은 기업 성장의 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