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문재인 대통령과 박항서 감독
새해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 축구의 기적을 일군 박항서 감독을 한 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 침체에 빠진 국가대표 축구팀이나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방법은 비슷하다. 기(氣)를 살려 선수나 기업인들이 신나게 뛰게 하면 된다.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을 때 선수들은 “체력이 약해 만년 예선 탈락”이라고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테스트해보니 체력이 약한 게 아니라 체구가 작아 상대팀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기업인들은 극도로 기가 죽어 있다. 오죽하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의 새해 첫말이 “올해는 기업인들 사기 좀 올려 달라”는 하소연이었겠는가.

그간 촛불 주체들이 민관 합작으로 기업인들을 너무 심하게 두들겨 팼다. 단순한 경영환경 악화 정도가 아니라 지배구조개선을 한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 휘저어대서 오너십 자체도 불안하다. 근로자는 ‘정규직화’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경영권 방어가 불안해지는 기업인은 ‘비정규직화’할 판이다.

지난주 중소기업중앙회 신년사에서 대통령은 기업투자 활성화를 국정 지표로 내세웠다. 이에 호응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같은 경제부처 장관들은 산업현장을 방문하는 등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런데 같은 대통령을 모시면서 다른 ‘규제형 장관’들은 최저임금법시행령 개정, 공정거래법 개정 등에서 보듯이 여전히 기업의 발목 잡는 일을 하고 있다. 이건 마치 박 감독이 취임하기 전의 베트남 축구대표팀과 같다. 팀워크 없이 선수들이 제멋대로 공을 차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모든 장관이 일사불란한 팀워크로 ‘기업투자 활성화’라는 골 포스트를 향해 달리도록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기업인이 “이번에는 진짜일까?”라며 갸우뚱하고 있다. 작년에도 문 대통령이 비슷한 말을 했지만 모두 이벤트성 말잔치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단호히 구체적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가칭 ‘기업투자 활성화 확대회의’를 만들면 좋겠다. 기업과 산업현장을 잘 아는 부처의 장관이 보고하고 제기되는 애로 사항, 정책 건의를 그 자리에서 관련 부처 기관장에게 직접 지시하는 것이다.

이 자리에는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필요하다면 검찰, 경찰의 장(長)까지 참석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의 투자 의욕이 바닥인 것은 단순한 경제정책의 실패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 헤지펀드들에 멀쩡한 우리 기업이 먹히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도록 하면서, 노조의 유성기업 간부 구타에 팔짱을 낀 경찰은 꾸짖고, 지나친 기업 세무조사나 기업인 처벌 등에 대해서도 옥석을 가리도록 하는 것이다. 또 대통령의 새로운 국정 의지에 반해 계속 공을 거꾸로 차며 기업을 후려치는 규제형 장관들은 국정쇄신 차원에서 경질할 필요가 있다. ‘집권 3년차 징크스’를 깨기 위해선 이분법(二分法)적 도그마(dogma) 정치를 상생(相生)의 정치로 바꿔야 한다.

그간 너무 ‘재벌·갑질-노조·을’이란 이분법적 편가르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영세 소상공인, 자영업자라는 새로운 ‘뉴 을(乙)’이 생겨 정치 세력화한 것이다. 광화문에 모여서 먹고사는 것을 절규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임금 인상을 주장하는 노조 구호보다 훨씬 더 처절하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블 갑(기업·노조)-뉴 을(영세소상인 등)’의 사회가 돼 버렸다.

삼분법적 상생의 정치에선 갑과 을 사이에 ‘알파’가 있다. 이 알파는 국민일 수도 있고, 노사가 경제 살리기 위해 손잡는 ‘우리 함께’일 수도 있다. “지금 밀리면 끝장이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권력의 단맛을 보는 것이 끝장이라는 뜻이다. 절박한 진실은 “지금 변하지 않으면 끝장이다”다. 한국 경제는 건물이 기울 듯이 기울고 있다. 이제라도 제대로 하면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금년을 허송하면 경제는 쓰러지고 진보의 장기 집권 꿈(!)도 끝장이다.

“배고파 못살겠다. 갈아치자!” 건국 이래 가장 파괴력 있는 선거 구호였다. 또다시 골목식당의 아줌마, 편의점주, 영세 자영업자 아저씨들이 절규하고 있다. 민초(民草)들 입에서 이런 구호가 나와 재집권한 정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