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익보다 상생’을 앞세우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 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이들에 대한 지원 확대를 주문받은 금융회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 등에 대한 금융 지원인 ‘사회적 금융’을 활성화할 다양한 방안을 내놓으라는 압박이 갈수록 커지면서 ‘금융의 본질’에 대한 논란이 함께 일고 있다.

금융회사의 대출 심사 때 이익을 우선으로 하지 않는 사회적 경제 기업의 특성을 감안해 일반 기업들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라는 금융위원회 지침이 대표적인 예다. 대출 심사의 핵심 기준인 매출, 영업이익, 차입금 의존도 등 재무지표 항목 반영을 줄이는 대신 경영자 철학, 연대 및 배려, 조합원 편익, 지역사회 상생 기여도 등 비(非)재무지표 항목들을 중점 반영하라는 것이다. 전국은행연합회도 사회적 경제 기업의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대출해 준 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경제 기업 육성은 금융의 사회적 역할과 기여라는 관점에서 무시할 수만은 없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정도(程度)’가 있는 법이다. 얼핏 듣기에 그럴싸한 명분을 앞세워 업(業)의 본질을 호도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더구나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절반가량이 적자를 면치 못하거나 사업을 중단하고 있다는 판국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사회적 기업 1641곳 가운데 818곳(49.5%)이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만2381곳(2017년 기준)에 달하는 협동조합 중 실제 운영 중인 곳은 53.4%에 불과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이런 조직들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가 가뜩이나 저(低)신용자 지원 확대 등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금융 모럴해저드를 확산시키고, 급기야는 산업으로서의 금융을 망치는 사태를 야기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예금보험공사가 며칠 전 새 비전으로 ‘안전한 예금, 따뜻한 금융, 행복한 국민’을 선포하며 내건 ‘포용적 금융 등 사회적 가치 실현’은 금융의 원칙과 본질이란 관점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 많다. 신용보증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사회적 가치 실현의 일환’이라며 ‘인권경영 선언’을 발표했다는 소식에는 더욱 어안이 벙벙해진다. 어떤 말로 포장하더라도 금융 앞에 ‘인권’이라는 수식어까지 들이민 것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금융회사로서 본업을 충실히 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라는 관계자의 말이 더 이상 메아리 없는 푸념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공론의 장(場)에서 금융의 원칙과 본질 등이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어야 대한민국이 진정한 소통의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