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올 들어 운용 손실(1~10월 -0.57%)을 내면서, 적립금(10월 말 637조원)이 약 16조원 쪼그라들었다. 특정 기간 동안 주가 부진 등의 사유로 적립금이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의 운용 손실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12월 주가 급락을 감안할 때, 올해 전체 수익률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0.18%) 이후 처음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올해 운용 손실이 발생한 데 대해 국민연금공단 측은 국내외 금융시장이 약세를 보인 점을 꼽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 미국 유럽에서 본격화된 통화긴축, 신흥국 신용위험 고조 여파가 컸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얘기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에도 문제를 드러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민연금 주요 운용 상품들이 각각의 비교 기준인 벤치마크(시장 평균수익률)를 훨씬 밑돌았다는 점에서다. 10월 말까지 국내 주식 수익률은 -16.57%를 기록해 벤치마크 지수보다 0.46%포인트 낮았다.

국민연금이 초라한 운용 성적을 낸 근본 원인을 짚어야 할 이유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국내 주식에 과도하게 쏠린 자산 배분 등을 근본 문제로 진단한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국민연금의 안이하고 허술한 운용이다. 적립금 운용을 책임지는 기금운용본부장직을 2017년 7월부터 15개월간 공석 상태로 팽개쳐 뒀던 게 단적인 예다. 심지어 본부장 역할을 대행하던 해외증권실장까지 사임하면서 운용본부는 오랜 기간 파행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 이러고도 국민연금이 제대로 된 운용 성적을 냈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방치한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공단 소재지 문제에 대한 해결도 시급하다. 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전북 전주혁신도시로 옮겨간 이후 해외 금융시장 전문가들과의 접촉이 줄어들고, 그로 인한 유망 상품 발굴 부진 등 포트폴리오 구성에 허점이 드러난 지 오래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기금운용본부만은 금융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는 시장 목소리에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국내 증시 규모에 비해 국민연금이 너무 비대해져 ‘연못 속 고래’라는 지적을 받는 점도 해법이 필요하다. 기금운용본부 분할과 경쟁체제 도입 등 대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 적립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전체 가입자들의 몇 년치 납입액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보험료 납입과 연금액 지급 측면의 제도 개선 못지않게 운용시스템 개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