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역설적인 현상들
최근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 대해 응답자 중 70% 이상이 ‘어렵다’고 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봤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취업준비로 인간관계를 포기한 ‘사포세대’, 나아가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취업난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에 정부는 공공 일자리 창출을 통해 취업난 해소에 나서고 있다. 공공 일자리는 어느 정도의 생존력을 갖고 있을까. 공적 지원금이 끊겼을 때 없어진다면 과연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취업난이 심각하다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업에 가보면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탄하고 있다.

날로 떨어지는 출산율로 인구절벽이 예상된다는 우려도 들린다.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이 있지만 이 혜택을 누리고자 아이를 더 낳으려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육비가 많이 들어 애 낳기가 겁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이 전 세계에서 손꼽아 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베이비붐 시대였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둔 지금은 다양한 경제지표에서 선진국 문턱에 있다. 그러나 가구당 출산율이 한 명이 채 안 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물론 취업이나 출산 문제는 사회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생기는 것이지만, 단순히 현상만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는 얘기다. 당장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완화하는 정책을 펴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 원인을 찾아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술계에도 역설적인 상황이 꽤 많다. 예컨대 예술에 대한 지원금은 계속 증가하지만 예술단체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예술가는 돈이 없지만 매일 술은 마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예술가와 단체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금전을 지원하는 보조금은 위험하다.

20여 년 가까이 예술단체의 경영 컨설팅을 하면서 예술을 활성화하고 예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부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느껴왔다. 하지만 근시안적 처방으로 단순히 보조금을 주는 과거의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창작 환경과 예술 향유의 방식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예술 지원 방식은 시대의 변화를 좇아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획기적인 예술 지원 방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