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영리병원'이라는 말
국내 첫 ‘영리병원’이 탄생하기까지 16년이 걸렸다. 병원이 이윤을 추구하면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된다는 반대 여론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작은 동네 의원부터 대규모 병원까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곳이 있던가. 지난해 연세대의료원의 의료이익은 3000억원에 이른다. 개업한 의사들의 평균 연봉은 2억3000만원이다. 이들이 비영리활동으로 돈을 번다고 하면 언어도단이다.

‘영리병원’이라는 용어는 명백한 잘못이다. 외부 투자를 받아 수익을 나눌 수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정식 용어다. 원래 의미는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주로 외국인 환자에게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어제 허가가 난 제주 녹지국제병원도 중국 자본과 한국 의료진이 협력해 ‘국경 없는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영리’ 대 ‘비영리’의 이분법적 틀에 가두는 바람에 혼란이 왔다. 처음부터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명칭을 썼으면 “환자 치료보다 이윤만 추구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훨씬 줄었을 것이다. 오히려 “양질의 투자로 의료시설이 좋아지고 건강보험의 제약에서 벗어나 더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본래 취지가 돋보였을 수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주도와 8개 경제자유구역에 외국계 투자 병원을 유치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2002년이다. 한국의 우수한 의료기술이 외국의 풍부한 자본과 만나 의료관광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으로 성장하도록 돕자는 취지에서였다. 그 전까지는 첨단 의료기술이나 신약개발용 고가 장비와 연구·개발에 드는 외부 투자 유치가 어려웠다.

독일과 프랑스의 투자개방형 의료기관은 전체 병·의원의 20%에 이른다. 의료의 공익적 목적을 구현하는 공공병원 외에 이들도 국가 의료보험 체제의 통제를 받는다. 우리나라 역시 모든 병원이 국민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돼 정부의 가격 통제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의료비가 폭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시장 경쟁에 따라 가격이 내려가고 서비스의 질은 좋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안과와 성형외과 등의 경쟁 덕분에 라식수술이나 피부미용 가격이 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치과 임플란트 가격도 많이 떨어졌다. 자유 경쟁과 시장원리의 성과다. ‘비영리’는 선하고 ‘영리’는 악하다는 흑백논리에 갇힐 때 손해보는 것은 의료 수요자인 국민이다.

잘못된 용어는 잘못된 인식을 동반한다. ‘공짜’가 아닌데 무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말들도 그렇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복, 무상의료 등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모두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 그래서 공자는 “이름을 바로 세우는 정명(正名)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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