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가 진짜 강자다.”

웹소설(인터넷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클리셰(상투적인 말)다. 2002년 ‘고무림’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는 경쟁에서 살아남아 강자가 됐다. 회원 수는 74만 명이 넘고, 유료회원만 12만 명(2017년 기준)에 달한다. 글을 쓰는 작가만 4만 명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인터넷 소설 시장은 2010년 이후 침체기에 들어갔다. 수십 개 사이트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웹소설 판매 부진의 영향이었다. 신흥 강자들도 시장에 등장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다. 살아남은 사이트는 손에 꼽을 수준이었다. 문피아는 살아남아 시장을 장악했다. 여전히 ‘장르문학의 성지’로 통한다. 지난 19일에는 엔씨소프트와 중국 최대 웹소설 플랫폼 CLL로부터 250억원을 투자받았다. 클리셰 속 ‘진짜 강자’가 된 셈이다.

김환철 문피아 대표(62)는 “문피아를 미국의 ‘마블’과 같은 곳으로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마블은 만화책 출판사로 시작해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등 캐릭터를 활용한 게임과 영화를 흥행시키며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이 됐다.
엔씨소프트 등서 250억 투자 받은 문피아…"한국의 '마블'될 것"
◆고무림에서 유료화까지

문피아의 전신 고무림이 문을 연 2002년은 PC통신 시대에서 인터넷 시대가 시작된 직후였다. 김 대표는 “천리안과 하이텔 같은 PC통신에서 소설이 인기를 끈 것을 보고 인터넷에서 플랫폼을 선점해야겠다고 생각해 고무림을 열었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수익 모델이 없었다. 대신 1년 먼저 문을 연 경쟁 사이트 ‘유조아(현 조아라)’에는 없는 목표가 있었다. 이 플랫폼을 통해 작가 지망생과 만나고, 이들을 육성한 것이었다. 김 대표 스스로가 한국 1세대 장르소설(무협지) 원로 작가라는 책임도 있었다. 온·오프라인 모임인 ‘연무지회(현 문향지연)’를 열어 작가와 지망생들이 한데 모여 고민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연무지회는 문피아만의 상징이 됐다.

2010년께 웹소설 시장 전체가 얼어붙자 수익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종이책 한 권을 내놓으면 도서대여점이 수만 권을 사가던 ‘호시절’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문피아를 2012년 말 유료로 전환했다. 누구나 원하면 유료연재를 하고, 독자는 일정한 분량을 무료로 보고 난 뒤 한 편에 100원씩 결제해 보는 시스템을 갖췄다. 김 대표는 “웹소설이 인기가 시들해진 이유는 출판사들이 출판하는 소설과 독자가 원하는 소설 사이 간극 때문이었다”며 “편집부가 고루한 잣대를 가지고 소설을 검열하는 걸림돌을 없앴다”고 설명했다.

유료전환 후 첫해에 돈을 조금 벌었다. 이를 가지고 ‘도박’도 했다. 우수한 웹소설작가 지망생을 모으기 위해 상금 3억5000만원을 내걸고 공모전을 했다. 그는 “미쳤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이 덕에 1년에 10억원씩 버는 스타 후배들이 나왔다”고 했다. 문피아 최고 스타작가는 연 10억원, 상위 10%는 못해도 4억~5억원은 번다고 덧붙였다.

◆코스닥 상장 준비 중인 미래의 마블

미래의 ‘마블’을 위한 움직임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31일 문피아에서 연재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드라마 ‘탑 매니지먼트’가 유튜브에서 방영된다. 김 대표는 “최근 대세 장르가 된 스타와 팬 사이 사랑 이야기의 효시 격인 작품”이라며 “유튜브가 투자한 유튜브 오리지널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웹드라마 외에도 올해 문피아에 연재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웹툰 10개를 선보일 예정이다.

투자 유치를 계기로 문피아는 지난 25일 CLL에 ‘환생좌’ ‘차원군주’ 등 인기 연재 소설 13개 작품을 수출했다. 엔씨소프트에는 게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연재 소설 속 등장인물과 배경을 공급할 예정이다. 그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은 물론 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수년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도 탄탄한 세계관(가상의 배경과 설정)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문피아는 내년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문피아는 기업 공개와 투자 유치를 통해 확보하는 자금을 웹소설 작가 양성에 투자할 계획이다. 사이트를 유료화한 뒤 매년 해온 공모전 상금도 높이기로 했다.

김 대표는 낮에는 문피아 대표로 일하고, 밤에는 후배들을 챙기는 데 시간을 쓴다. 개인적으로 후배들을 돕는 일을 문피아의 공식업무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음달 작가지망생을 위한 웹소설 설명회를 연다. 내년엔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인 ‘금강 아카데미’도 개설한다. 김 대표는 “웹툰 시장에는 정부 지원금도 많고, 대학교에 관련 학과도 있지만 웹소설 지원은 미흡했다”며 “스타 웹소설 작가의 탄생은 곧장 문피아에도 득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신인 작가 양성과 지원에 더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