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천자 칼럼] 이시돌 목장

제주 한라산 기슭의 드넓은 목초지, 가을 햇살 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말, 갓 짜낸 젖으로 만든 우유와 치즈…. 이시돌 목장의 목가적인 풍경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황무지였던 이곳을 초원으로 바꾼 사람은 ‘푸른 눈의 신부’ 패트릭 J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26세 때인 1954년 제주 한림성당 사제로 부임했다. 당시는 6·25전쟁 직후로 섬 사람 모두 가난에 시달렸다. 미국 원조품으로 옥수수죽을 쒀 나눠주던 그는 어느 날 성경을 내려놓고 삽을 들었다. 버려진 땅을 개간해 축사를 짓고 새끼 밴 돼지 한 마리를 인천에서 들여와 양돈업을 시작했다.

주민들과 함께 기른 돼지는 날로 불어났다. 사람들은 그를 ‘돼지 신부’라고 불렀다. 곧 양과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양이 자라자 털을 깎아 스웨터를 짰다. 고국의 어머니에게 전해 받은 물레로 털실 잣는 법을 가르쳤다. 한림수직이라는 회사도 세웠다. 그 수익금으로 병원과 양로원, 요양원, 유치원, 청소년 수련원, 노인대학을 설립했다.

이시돌 의원을 통해서는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펼쳤다. 무의탁 환자들의 집을 찾아 약과 식료품도 나눠줬다. 주변에 의료시설들이 생기자 2002년 제주 최초의 호스피스 의원으로 바꿔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봤다. 비용은 이시돌 목장의 사료공장과 종마사업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충당했다.

어린 시절 수의사를 꿈꿨던 그가 돼지 한 마리로 대규모 목장을 일구고 많은 환자에게 인술을 베푸는 과정을 두고 사람들은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라고 했다. 예수가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000여 명을 먹인 것과 같다는 얘기다. 그는 여러 사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까지 창립했다.

우리가 ‘이시돌’이라고 줄여서 부르는 목장의 정식 명칭은 스페인의 농부 출신 성인(聖人) 이름을 딴 성(聖)이시돌 목장이다. 사제복을 입은 농부이자 양 치는 목자인 그의 모습과 닮았다. 올해 4월 90세로 세상을 떠난 그는 이시돌 목장의 수녀원 묘지에 묻혔다. 장례미사 때 신자들은 “우리 신부님을 부디 성인품에 받아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그가 떠난 두 달 뒤인 지난 6월 정부는 ‘명예국민증’을 헌정했다. 내달 22일에는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에 아산상 대상을 수여한다. 모두 ‘하늘 목장’의 그에게 바치는 감사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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