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의 데스크 시각] 기업 떠난 자리, 도시가 사라진다
“군산엔 산부인과와 전문의들이 별로 없어요.”

전북 군산에 사업장을 둔 한 기업인이 최근 들려준 말이다. “앰뷸런스와 간호사를 상주시키고 있지만 늘 불안해요. 화상을 입은 환자가 생기면 치료를 위해 인근 대도시까지 한 시간가량 이동해야 합니다.” 그의 토로는 이어졌다. “가뜩이나 지역 경제가 좋지 않은데 금요일 오후만 되면 주말을 보내러 서울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아 시내가 텅 빈 것 같아요. 이러다 도시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예요.”

한국GM과 현대중공업의 조업 중단 여파가 군산 경제에 상상 이상의 충격을 주고 있다. 한국GM 군산공장이 지난 5월 폐쇄되면서 협력업체들의 30%가 도산했다. 지난해 7월 문을 닫은 현대중공업의 협력사는 대부분 폐업했다.

기업 떠나자 무너지는 군산 경제

1996년 가동을 시작한 한국GM 군산공장은 연간 1만2000여 명을 상시 고용하며 전북 수출의 30%, 군산 수출의 50%, 지역 고용의 20%가량을 책임져 왔다. 이 공장에서 일하던 1만5000여 명 중 1만3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6월 말 기준 군산 인구는 27만3700명으로 1월에 비해 3628명 줄었다. 경제가 무너지자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20일 ‘2018 부산-한경위크’ 행사에서 만난 부산·경남지역 기업인들은 절절한 어려움을 쏟아내느라 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한 기업인은 “배철수 차가 안 팔린다”는 말로 지역 경제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조선과 철강, 수송(해운·물류)에 이어 자동차산업까지 어려워지면서 지역 협력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마다 대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주요 대기업에는 군산에 투자하거나 유휴 설비 등을 인수해달라는 직·간접적인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완성차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인 광주광역시는 현대자동차를 끌어들이느라 총력전을 펴고 있다. 구미시는 삼성전자가 휴대폰 부품공장 이전에 나서자 범시민운동본부를 발족해 반대운동에 들어가는 등 ‘삼성 잡기’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인들 사기부터 올려줘야

지자체들이 앞다퉈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두 회사가 올해 각사 공장이 있는 지자체에 납부한 법인지방소득세(2017년 실적분)는 1조원을 웃돌았다. 삼성전자가 화성, 수원, 평택, 용인(기흥) 등 4곳에 낸 소득세는 8405억원이다. SK하이닉스는 이천에 1903억원의 세금을 냈다.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은 많다. 각종 규제와 경직된 노사관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작 기업인들이 꼽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반(反)기업 정서 확산에 따른 기업가정신 위축이다. 부산에서 수출기업을 경영하는 A씨는 “기업인들의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 떨어져 있다. 내가 (사업) 하기도 싫고 자식들한테 물려주기도 싫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 법인세율 인상 등으로 경영 여건이 악화된 와중에 기업인에 대한 정서도 갈수록 나빠져 더 이상 기업하기가 싫다는 하소연이다.

기업이 도시는 물론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시대다. 기업의 성장은 세수 증대 외에 일자리 창출, 인구 유입, 경제력 향상 등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기업이 떠나고 도시가 죽으면 국가도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leekh@hankyung.com